北핵실험 전망 속 '6·15선언' 22주년.. 북한은 2년 전처럼 '대적사업'

이설 기자 2022. 6. 15. 06: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남북한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간 합의인 '6·15남북공동선언'(6·15선언)이 15일로 제22주년을 맞았다.

북한은 지난 8~1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론에서 "대적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들과 전략 전술적 방향들이 천명됐다"고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북한은 이후 남북 당국 간 통신연락선을 끊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실제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尹정부 출범 이후 한미공조 강화에 '정세 긴장' 책임 전가할 수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남북한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간 합의인 '6·15남북공동선언'(6·15선언)이 15일로 제22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대적투쟁'을 선포하면서 의미도 퇴색된 모습이다.

북한은 지난 8~1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론에서 "대적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들과 전략 전술적 방향들이 천명됐다"고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북한은 '대적투쟁' 대상·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는 통상 우리 측을 겨냥해 쓰던 표현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우리 군이 북한군과 북한 정권을 '적'(敵)으로 재차 규정한 만큼 북한 또한 '맞대응' 차원에서 '대적' 개념을 꺼내들었을 수 있다.

북한은 2년 전인 2020년 6월에도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을 통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김 부부장은 당시 우리 측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얼마 있지 않아 '6·15'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방치된다면 남조선(남한)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란 담화를 냈다. 남북 간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돼온 책임을 모두 우리 측에 돌린 것이다. 북한은 이후 남북 당국 간 통신연락선을 끊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실제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북한이 이번에도 '6·15' 기념일을 한반도 정세 불안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단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총비서는 이미 이번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오늘 우리 국가(북한)의 안전 환경은 매우 심각하며 주변 정세는 더욱 극단하게 격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띠고 있다"며 대외 정세를 국방력 강화의 명분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우리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간 대북공조가 강화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최근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임박했단 관측에 따라 '6·15' 기념일에 맞춰 관련 행보에 나설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2020년 남북 간 긴장 고조 이후엔 당국 차원에서 '6·15선언'을 상기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올해도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시기는 김정은 당 총비서의 정치적 판단에 달렸단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식량난, 민심 이반 여부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북한이 전원회의 직후 핵실험을 단행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도 추가적인 동향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한은 '6·15선언' 이듬해인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기간 중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 창궐한 2003년을 제외하곤 민간단체 위주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2009년 이후부턴 공동 행사를 열지 못했다.

sseol@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