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폐쇄·신흥국 정전"..유럽의 러 에너지 독립 부작용 속출

고준혁 2022. 6. 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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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비료업체·스페인 철강사, 가스가격 급등에 공장폐쇄
유럽이 전세계 LNG '흡입'..신흥국은 에너지 부족
러, 서방 제재에도 건재..에너지 수출로 125조원 매출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천정부지 치솟는 연료 가격에 제때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면서 일부 제조업체는 공장을 폐쇄하고 신흥국은 정전 사태를 겪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에 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면서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영국의 최대 비료 생산업체 CF 인더스트리 홀딩스의 북아일랜드 지역 공장 전경. (사진=AFP)
유럽 비료·철강 기업, 에너지 가격 상승에 공장 문 닫아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최대 비료 생산업체인 CF인더스트리 홀딩스는 비료 원료인 암모니아를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공장을 영구 폐쇄한다고 지난주에 발표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탓에 이들 공장은 지난해부터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CF인더스트리는 암모니아를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사오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스페인 철강업체들은 철강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폐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철강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급증한 영향이다. 마드리드에 있는 스테인레스강 제조업체인 아세리녹스 SA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완전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 수입을 줄이는 등 에너지 제재를 가하면서 유럽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셰일가스를 생산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무려 3배 가량 높다. 지난해 유럽에 공급된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이 40%에 달하는데, 갑자기 공급량이 대폭 줄어들며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유럽연합(EU) 등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겨 연료 비용 상승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 현실과 동떨어진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유럽의 철강 로비그룹 유로퍼는 “수소 에너지 비용이 충분히 싸지지 않는다면 가스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獨 등 유럽이 전세계 LNG ‘흡입’…신흥국 에너지 위기 ‘나비효과’

신흥국 등 유럽 대륙 이외 지역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가 부족해진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한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스위스 등의 수출용 액화천연가스(LNG)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기업 셸의 스티브 힐 부사장은 “유럽이 전 세계 LNG를 빨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파키스탄에선 LNG 공급이 끊기면서 정전까지 발생했다. 파키스탄은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인 에니 등과 LNG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있는데, 에니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수출을 중단한 탓이다. 에니 입장에선 독일 등에 LNG를 판매해 거둬들이는 수익이 파키스탄과의 계약 파기 위약금을 메우고도 남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그렇다고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이 독일보다 더 비싼 값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다. 파키스탄 정부가 2021회계연도에 지출한 LNG 수입 비용은 50억달러(약 6조3000억원)로 전년 대비 2배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등 기타 신흥국들에서도 파키스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컨설팅 기업 팩트글로벌에너지(FGE)의 페리이둔 페샤라키 회장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유럽이 유럽 안에서 원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그 결정이 국경 밖으로, 특히 신흥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공정하고 불합리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러, 서방 제재에도 건재…에너지 수출로 125조원 매출

러시아는 서방 진영의 제재에도 치솟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큰 이익을 보고 있다.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00일 동안 석유, 가스, 석탄 수출로 930억유로(124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했다.

센터의 라우리 밀리비르타 연구원은 “이러한 매출은 전례가 없는 규모다. 가격 상승세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인데다 수출량 또한 사상 최고치에 가깝디”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또 서방 제재에 대비해 아시아에 수출하는 원유 비중을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초 러시아의 아시아 원유 수출 규모는 전체 수출량의 3분의 1에 그쳤으나, 지난 10일에는 절반 수준으로 증가했다.

고준혁 (kotae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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