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의 착각'..지방선거 공천

김기성 2022. 6. 14. 18: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프리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무투표 실시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번 선거에서 전북지역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자는 36개 선거구 중 22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연합뉴스

[전국 프리즘] 김기성 | 수도권데스크

공천은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하는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필수 절차처럼 돼 있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기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도 인식된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도 각 정당은 공천관리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공정한’ 공천이 이뤄지는 것처럼 꾸몄다. 후보자들에 대한 면접과 여론조사, 권리당원 투표 등 여러 과정도 거쳤다고 정당들은 선전했다.

그러나 이른바 ‘전략공천’이나 ‘무투표 당선 지역 공천’에서도 이런 공정성이 담보됐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말 그대로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이지만,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철저히 무시한 채 ‘줄세우기 공천’한 사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패배 이후 위기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중앙당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전략공천을 해 ‘적전분열’을 야기했고 ‘지방선거 참패’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지역주민들과 사실상 단 한차례도 호흡을 맞추지 않은 후보를 불쑥 내세웠는가 하면, 뚜렷한 이유 없이 현역 시장을 ‘컷오프’로 내치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경선 방식을 바꿔 몇년 동안 지역에서 표밭을 갈아온 후보자들이 “공천학살을 당했다”고 아우성치게 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그랬고, 안산과 광명·오산·광주, 대전 서구 등이 주요 사례다.

이런 공천 양상을 보면, 지역 유권자의 권리를 외면한 채 ‘후보자가 정당의 이익이나 2년 뒤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 얼마나 복무할 수 있는가’라는 것 이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기준도 두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체제에서 기형적으로 탄생한 ‘무투표 당선 지역 공천’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전국 313개 선거구 494명에 이른다. 지역구 기초의원 282명, 광역의원 106명, 비례 기초의원 99명, 기초단체장 6명, 교육의원 1명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71개 선거구에서 89명이 무투표 당선된 것과 비교해볼 때 5배나 늘었다.

언뜻 보면 단순히 무투표 당선이 나오는 선거제도에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촘촘하게 따져보면 ‘무투표 당선 지역 공천권’을 거머쥐고, 유권자들의 선택과 투표권마저 빼앗는 거대 양당의 이기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각 정당은 자신들에 유리한 지역을 ‘텃밭’이라고 하고 불리한 지역을 ‘험지’라고 말한다. 출마 희망자가 있는데도 험지에는 공천을 내지 않는다. 반면,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텃밭에는 줄을 세우는 공천을 한다.

따라서 무투표 지역 공천자는 지역주민의 일꾼이 아닌 자신을 공천해준 ‘힘 있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 또는 중앙 정치인의 촉수요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 위에 올라서고 만다. 이들이 지역주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반면에 이 때문에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자들은 불공정하다고 울분을 토한다. 유권자들도 ‘공정하지 않은 선거’라는 비판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거대 정당들은 “지역에서 능력 있고 합리적인 인물을 골라 공정함을 잃지 않은 공천을 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당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당연한 결과이자 운도 뒤따른 것 같다”고 귀띔한다. 선거 결과야 어쨌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공평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착각’에 불과하다. 자신이 일궈온 표밭에서 심판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공천 방식이 공정한가. 무소속이나 소수정당 지역 정치인의 입성을 막기 위해 거대 양당이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중선거구제가 공정한가. 이 모두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매우 불공정한 행태다.

공정과 상식, 정의라는 말은 이제 누구나 내뱉는 말이 됐다. 그러나 아직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일선에선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player009@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