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국토부-화물연대 교섭..시험대 오른 원희룡 리더십

세종=박소정 기자 2022. 6. 14.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차 교섭 '8시간 진행' 불구 국토부 "수용 곤란"
총파업 일주일째..생산·출하 차질도 점점 가시화
국토부 미온적 대응 일관.."물가 자극 난감하네"
"원희룡, 화물연대 사태 매듭 어떻게 풀까" 주시
12월 기한이 끝나는 안전운임제는 국회에서 결론이 나야 조정될 수 있습니다. 국회 심의사항인 만큼 정부가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국토부는 (안전운임제를) 반대하거나 뒤로 돌릴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빠른 시일 내 당사자 간 원만히 합의가 이뤄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국토교통부가 일주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연일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대화가 공전하는 모습이다. 화물연대 측은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인 ‘안전운임제’에 대한 뚜렷한 정부 입장을 원하고 있으나, 정부는 ‘고물가 쇼크’ 등의 당면 현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한쪽 편에 서지 않고 중재자 역할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다만 이런 미온적인 태도로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 ‘물류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대응이 주목되는 모습이다. 취임 한달을 맞은 수장 원희룡 장관의 이번 화물연대 사태 해결법이 부동산 문제와 함께 그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화물연대와 지난 12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총 8시간가량 물류 정상화를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와 관련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국토부는 “검토 결과 수용이 곤란해 대화가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부에서 안전운임 일몰제폐지, 전차종·전품목 확대 및 유가대책 등 2차 교섭을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4차례 릴레이 대화에도 ‘결론 없음’

정부와 화물연대의 교섭은 지금껏 4차례 진행됐다. 총파업 시작 전인 지난 2일 1차 교섭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국토부가 이번 갈등의 주원인인 ‘안전운임 3년 일몰제(2020~2022년 도입 후 연장 결정) 폐지’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며 지난 7일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사흘 만인 10일부터 12일까지 연이어 2·3·4차 교섭이 이뤄졌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대화는 결렬됐다.

총파업이 길어질수록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현재 주요 업종에서 1조원 이상의 생산·출하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날 자동차·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주요 업종에서 지난 7일부터 지난 12일까지 1조6000억원의 생산·출하·수출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 측은 “앞으로도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계속 화물연대와 지속적으로 대화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덧붙였지만, 양측의 입장 변화에 뚜렷한 진전이 없어 총파업 사태는 무한정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정부가 교섭의 당사자가 아닌, 화물연대와 화주 사이의 ‘중재자’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노사 자율적으로 파업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사태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조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인 13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쌓여있는 컨테이너 옆에 화물차들이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 “물가 자극할까”…'안전운임제’에 신중한 국토부

정부의 이런 미온적인 대응 이면에는 ‘물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이 된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가장 시급한 당면 현안으로 인식 중인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해 13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8.6%를 기록해 4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면서 물가 고점이 보이기는커녕 충격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최근 긴급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의 최저 운송료를 보장하는 제도로, 이른바 화물운송업의 ‘최저임금제’로도 불린다. 그런데 화물 노동자들의 주장대로 안전운임제를 영구입법화 한다면 운송비가 오를 것이고, 이 증가분을 결국 화주가 물건 값에 반영하게 되면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어 물가 상승 압박을 가중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업 장기화로 물류 대란까지 현실화 해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고물가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원희룡 장관도 “화물 차주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만들어진 제도로 완성형이 아니다”며 “(안전운임제) 연장은 국민의 물가 부담으로 오기 때문에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언급한 바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뉴스1

◇ 정부 “원 구성 먼저”·국회는 ‘개점 휴업’·대통령은 “엄정 대응”만

국토부는 이번 논란이 법 개정 사안임을 들며 ‘국회 원 구성’이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도 지난 8일 진행된 관련 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안전운임제 문제는 법률 개정 사안”이라며 “제도 자체에 대한 국토부의 코멘트를 말씀드릴 수 없으며,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걸 양해해 달라”며 입장 표명에 있어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국회는 개점 휴업 상태다. 현재 여야는 전반기 국회 종료 이후 6·1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후반기 원 구성을 보름째 하지 못하고 있다. 입법부 공백 사태가 길어지면서 화물연대 총파업을 해결하기 위한 안전운임제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위법에 대한 엄정 대응이나 산업계 피해에 대한 원론적인 언급만 있을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의 대안과 관련한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파업 일주일째인 전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산업계 피해가 늘 수 있는 만큼 다각도로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주체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물류 차질이 점점 가시화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원 장관 취임 후 수장으로서의 역량을 증명할 주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첫 국토부 수장으로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함께 화물연대와의 교섭 문제를 어떻게 완만하게 푸는지가 앞으로 원 장관의 장악력을 보여줄 큰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