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국제노동기구 권고에도..특고 지위는 20년 넘게 제자리

유선희 기자 2022. 6. 13. 16: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지난 7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에서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등 기름값 급등에 따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화물연대 사태의 이면에는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라 등장한 특수고용직(특고) 노동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는 특고 노동자의 법률적 지위와 노동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잇따라 권고해 왔지만 정부·국회의 의지 부족으로 20년 넘도록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법률적 지위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니 어렵게 노사정이 합의해도 사측이 이행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서는 역사가 되풀이 돼왔다”며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한 국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고 노동자 규모는 50만~150만여명으로 파악된다. 총파업에 나선 화물차주들을 비롯해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간병인, 학습지교사, 대리운전 기사 등이 해당한다. 특고 노동자는 외형상 자영업자이지만 특정사용자의 사업을 위한 노무를 제공해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정부에서 특고 노동자들의 처우와 법률적 지위 문제가 다뤄진 시기는 2003년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계기가 됐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정책협의 방안(합의문)을 냈는데, 이에 따르면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문제에 관해 정부는 노·사와 성실하게 협의한다”고 했다.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겠다는 약속이었는데,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은 처우개선을 위해 매 정권마다 ‘대화 교섭’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가입한 특고 노동자들은 사용자로부터 계약해지나 징계 등 고용상 불이익을 받았다. 전국여성노조 골프장 캐디 조합원에 대한 제명 및 출장유보처분(2007년),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학습지 교사 조합원에 대한 계약해지(2011년)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행정관청도 특고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에 행정조치로 대응했다. 고용노동부 남부지청은 2009년 레미콘·덤프트럭 차주 등이 가입한 건설노조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특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 대해 인권위는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 정부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이하 노조법) 근로자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포함되도록 조항 개정”을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독립적인 판단과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있지 않으며 사업주에 대한 노무제공의 대가가 생계를 위한 수입 원천이라는 점에서, 업무 및 경제종속성 측면에서 일반 근로자와 유사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노조법상 근로자 여부에 대한 사업주 및 행정관청과의 반복되는 갈등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3권 보장에 관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ILO도 2006년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에서 특고 노동자와 같이 “고용관계를 특정짓는 전형적인 요소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고용관계(ambiguous employment relationship)’에 있는 이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며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한 보호는 “노동에서의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ILO 선언에 명시한 원칙들에 의거해야 한다”고도 했다. ILO는 지난해 4월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원칙)를 핵심협약으로 선정했다. 국내에선 지난 4월부터 협약 효력이 발효됐다.

하지만 국회의 입법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2017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특고 노동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형태의 제정안과 특고 노동자를 근로자 범위에 포함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2020년 낸 개정안도 아직 계류 중이다.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은 “화물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확대를 요구하면서 노동권 보장 필요성을 더 느낀다. 노동권이 부여된다면 교섭을 위해 파업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지난 4월부터 한국에 ILO 협약 87호와 98호가 발효됐는데도 특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와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