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내 집 될 줄 알았는데.." 치솟은 분양가에 쫓겨날 판

류인하 기자 2022. 6. 1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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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공임대’로 공급돼 분양 전환을 앞둔 경기 성남시 백현동 백현2단지 휴먼시아 아파트의 단지 내부 모습이다.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입주민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소송이 불가피하다.
분양전환 앞둔 성남 백현2단지
시세 반영 감정평가액 13억 산정
저소득 입주민 강제퇴거 불가피
인근 단지도 LH 상대 소송 제기
전국 곳곳서 관련 갈등 계속될 듯

“여기서 10년간 살려면 무주택을 유지하는 것이 입주 조건이라 그간 내 집 마련도 하지 못했습니다. 입주자들은 집주인도 아니라지만 재산세 등 보유세도 우리가 전부 다 부담해왔습니다. 10년 뒤 분양전환만 기다리던 입주자들은 13억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내쫓길 처지가 됐습니다.”(입주민 A씨)

10년 임대 후 분양전환을 앞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백현2단지 휴먼시아 주민들이 강제 퇴거 위기에 내몰렸다. 입주 10년을 맞아 분양전환 기회를 맞이했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임대주택 거주자가 부담하기에 높은 분양가를 내세우면서다. 주민들은 소송을 통해 분양가 산정에 대해 문제제기 하겠다는 계획이다.

LH는 2009년 1월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A21-2, A26-1, A14-1, A6-1 블록에 10년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 그중 A21-2 블록이 현재 백현동 백현2단지 휴먼시아다. 전체 772가구 중 ‘10년 공공임대’는 총 491가구다. 10년 공공임대는 주거취약계층이 저렴한 임대료로 10년간 거주한 다음 우선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임대주택과 유사한 유형이지만 청약통장을 사용해야 하고, 5년간 재당첨이 제한되기 때문에 일종의 후분양 아파트로도 볼 수 있다.

LH는 입주자들에게 101.25㎡ 기준 13억원의 분양가를 제시했다. 이 돈을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 퇴거가 불가피하다. 우선 LH는 “주변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이고, 계약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LH는 10년 공공임대의 분양전환가를 분양전환 시점의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액을 기초로 산정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오른 주변 시세가 공공임대아파트 분양전환가에 반영된 셈이다.

주거취약계층이 입주하는 주택이지만 백현마을 입주민들이 매달 납부한 임대료 역시 적은 수준은 아니다. 2009년 1월 입주자 모집공고 당시 책정된 월 임대료는 65만~70만원 선이다. 2년마다 계약 갱신을 하면서 월 임대료도 계속 올랐다. 지난 10여년간 임대료 및 수선료, 재산세 등으로 납부한 금액은 1억원이 넘는다.

LH의 10년 임대 분양가격 산정방식은 건설원가와 분양시점 감정가의 평균값으로 정하는 ‘5년 공공임대’와 달리 집값 상승기에는 분양가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게 설계돼 있다. 집값 상승을 전제하지 않은 채 설계된 10년 공공임대 후 분양전환 제도가 아파트값 급상승기를 맞으며 이 같은 문제를 낳게 된 셈이다.

입주민들은 현재 LH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LH가 제시한 가격이 합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소송은 앞으로도 전국 곳곳에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분양전환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10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에 17만4000가구에 달한다. 인근 봇들마을 3단지는 지난 2020년 6월 LH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해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입주민들은 구 임대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정한 ‘분양전환가격 산정기준’에 따라 분양가를 재산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LH는 그러나 입주계약서에 ‘분양전환가격 산정기준은 분양전환결정시기의 감정가격’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 2011년 4월21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구 임대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 ‘분양전환가격 산정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규정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분양전환가격 산정기준을 강행규정으로 보지 않을 경우) 임차인이 ‘산정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하며 분양계약 체결을 거절하면 임대사업자가 임차인의 우선분양전환권을 박탈하고 임대주택을 제3자에게 매각해 시세차익을 독점하는 등 임대주택제도가 임대사업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아무런 제한 없이 조성원가 혹은 그 이상으로 택지비를 산정해 무주택 임차인에게 그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고 형평을 상실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한주택공사의 존립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도 명시했다.

구 임대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공공건설임대주택 분양전환가격 산정기준은 건축비와 입주자 모집공고 당시의 택지비, 택지비 이자를 모두 더한 값이다. 백현2단지의 2009년 1월 입주자 모집공고 당시 전용면적 101.25㎡ 건축비와 택지비는 각각 1억7220만3000원, 2억9250만2000원이다. 건축비와 택지비를 모두 합해도 5억원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평형인 118.94㎡의 건축비·택지비 합계액도 5억4475만2000원 수준이다. 그러나 LH가 당초 통보한 분양가대로 입주자를 모집할 경우 LH는 백현2단지에서만 4900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가져가게 된다.

LH 관계자는 “10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격은 관련 법령 및 계약사항에 따라 감정평가금액으로 산정토록 정하고 있다”며 “분양전환가격 산정을 위한 감정평가 역시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시행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현재 분양가가 부담된다면 분양전환계약시 소득·자산 등 국민임대주택 입주기준 충족자인 경우 현재 납입한 보증금만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할부금 및 할부이자는 10년 후 일시납하는 방법도 안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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