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민폐 시위'] 원색 비난에 상여 소리.. 총수 집앞 천막·사옥 입구 불법 분향소

장우진 2022. 6. 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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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정도 지나쳐" 반감 확대
시위 방식, 자녀에 악영향 우려도
외국인은 "협박성 문구 낯설어"
국가 이미지 훼손까지 걱정할 판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이 천막을 치고 임금협상 교섭에 이 부회장이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아름기자
12일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포항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하청업체 직원 고(故) 이동우씨의 분향소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슬기기자 9904sul@

#"OOO마트를 올 때마다 한 낮에 천막치고 자고, 마이크 가져와서 시끄럽게 시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하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람들, 특히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반감이 든다."-현대차 서울 서초구 양재사옥 인근 마트 방문자 A(72·여)씨.

#"시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남의 집 앞에서 오래 하는 것은 민폐 아닌가."-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인근 거주자 B(50대·남)씨.

연일 계속되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기업과 사주를 향한 시위에 시민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시위자들은 성과급 분배, 해고자 복직,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주변인을 배려하지 못한 시위 방식에 질타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에 이어 윤석열 현 대통령의 사저 주변까지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시위 집회가 이어질 기세다.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는 오는 14일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앞 집회에 대한 '보복 시위'로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대리인을 통해 지난달 31일 양산 사저 앞에서 집회를 하던 보수단체 소속 회원 4명에 대해 명예훼손과 살인 및 방화 협박 등의 혐의로 양산경찰서에 고소한 바 있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 명소까지 시위·집회가 이어지면서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강남역에서 만난 프랑스인 프레데릭 씨(42)는 "프랑스에도 정치·인권을 주제로 한 시위·집회가 끊이지 않지만, 이렇게 특정 기업 앞에 총수에 대한 협박성 문구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은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일상사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자택(한남동) 주변까지 시위, 집회가 빈번하다.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는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이 대문 앞에 살색 천막을 쳐놓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재용 응답하라', '삼성전자 이재용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빨간색이 섞인 플래카드를 붙여놓고, 직접 이 부회장이 임금교섭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회장 자택 인근에 거주하는 D(50대·여)씨는 "여기는 차도 한복판이거나 집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시위가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글씨가 빨갛고 자극적이라서 아이들 교육에는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거주자인 E(30대·여)씨는 "시위를 할 수는 있다.하지만 재벌도 사생활이 있는데 집 앞까지 와서 이러면 불편할 것 같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삼성 서초사옥에도 '악질 장사꾼, 삼성 이재용', '범죄 은폐', '노동자 냉동폐기 공범들', '강도짓, 술수로 재벌된 후진국형 재벌' 등 이 부회장을 향한 날선 문구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인근에는 아파트단지는 물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들의 원성도 자자하다. 현대차 양재사옥의 경우 인근에 대형 마트가 위치해 있어 일반 시민들이 왕래가 잦은 지역이다.

현대차 양재사옥 앞에는 '정의선도 썩었다', '정의선은 각성하라', '정의선 똑바로해' 등 총수 일가를 향한 근거 없는 원색적인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이 문장만 봐서는 이들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일반 시민들은 알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요구의 정당성보다 기업 이미지 실추에 목적을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 수하동 동국제강 본사(페럼타워) 앞에는 포항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하청업체 직원 고(故) 이동우씨의 분향소와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은 '산재는 살인. 안전을 무시한 동국제강은 사과하라. 장세욱은 당장 나와 유족에게 사과하라' 등 총수 일가를 향한 문구들이다.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특히 산재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곳이 제한적인 만큼 유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나온다.

동국제강 본사 인근서 만난 직장인 C(39세·남)씨는 "분향소 설치는 누군가가 가족을 잃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미관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이야기할 창구가 얼마나 없으면 거리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색적인 비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주를 이룬다.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민들조차도 시위 방식 자체는 옳지 않다는 보는 시선이 많다.

과거와 같은 과격 시위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면서 달라진 시위 문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MZ세대(1980년~2000년대생)들도 임금 인상이나 고용 안정에만 초점이 맞춰진 이러한 과격한 시위 문화에 반대하며 사무직 노조를 결성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시민단체들도 이 같은 사생활 침해 시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자택 앞 시위는 개별 피해자들이 한이 맺혀 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자택 앞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가급적 사저는 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밤새 확성기를 틀어놓고 하는 시위는 하지 않는다"며 "택배노조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 집무실에 간 것도 회장이 나서달라는 취지로 간 것인데 그런 경우도 스피커는 안 튼다"고 덧붙였다.

김수연·장우진·김아름·전혜인·박한나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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