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통상 이슈 쌓였는데..美·日과 통상분쟁 승리 이끈 과장도 脫산업부

세종=전준범 기자 2022. 6.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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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산물 수입, 美 세탁기 세이프가드 분쟁 승소
서기관서 부이사관 초고속 승진했으나 최근 퇴사
올해 들어서만 과장 이상 간부 여러 명 사표 던져
"실물경제 위기 점점 커져..인력 이탈 대책 세워야"

“미국·일본 측 통상당국 관계자를 만나면 당신이 그 ‘미스터 정’이냐는 질문을 받곤 했어요. 그 정도로 일을 잘했는데 아쉽습니다.”

조선 DB

정씨 성을 가진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간부는 최근 퇴사한 정하늘(사진) 전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정 전 과장은 미국·일본과 맞붙은 대형 무역분쟁에서 한국의 연승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사표를 내고 산업부를 떠났다. 한 산업부 공무원은 “정 전 과장의 역할이 컸던 만큼 여러 동료가 (퇴사를) 말렸지만, 본인 의지가 확고했다”고 했다.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 자리는 인사혁신처에서 경력 개방형 직위로 지정해 민간인만 지원할 수 있다. 미국 변호사인 정 전 과장은 법무법인 세종에서 일하다가 2018년 4월 공모를 통해 공직에 들어왔다. 그는 세종에 있을 때부터 소위 ‘잘 나가는’ 통상 전문 변호사였다. 외국 법률시장 평가기관인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는 2016년 정 전 과장을 ‘떠오르는(up and coming) 변호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산업부에 합류한 정 전 과장이 이름을 알린 건 2019년 4월 일본산 수산물·식품 수입 규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우리나라의 역전승을 이끌면서다. 당시 WTO는 일본이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는 부당하다”며 제소한 사건의 최종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한국 승소를 선언했다. WTO가 식품 관련 분쟁에서 피소국 손을 들어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성과를 인정받은 정 전 과장은 2020년 12월 4급 서기관에서 3급 부이사관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일반 공무원이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려면 통상 15년가량 걸리는데, 정 전 과장은 2년 반 만에 해낸 것이다. 전 부처를 통틀어 개방형 직위 공무원이 승진한 사례도 정 전 과장이 처음이었다.

올해 초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두고 한국과 미국이 맞붙은 분쟁에서 한국의 승리를 이끈 주역도 정 전 과장이었다. WTO는 미국의 수입 물량 증가 분석이 논리적·적정성 측면에서 부실하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인정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 전 과장이 일당백으로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여도가 컸는데, 그만큼의 열정과 능력을 갖춘 후임자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현재 산업부는 인사혁신처를 통해 후임 통상분쟁대응과장 공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가 꽤 많이 지원한 것으로 안다”며 “인사검증 등 모든 과정을 거치기까지 1~2개월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통상분쟁대응과장 자리가 당분간은 공석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 전 과장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후임자가 금방 적응할 수 있도록 각 분쟁 과정에서 얻은 정보와 업무 팁 등을 잘 정리해두고 나왔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경. / 조선 DB

최근 산업부에서 일 잘하는 에이스급 공무원이 조직을 이탈한 건 정 전 과장 사례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미국 상무부와 반도체·배터리 등의 공급망 협력에 관한 실무를 책임졌던 과장급 간부가 사표를 냈다. 이 간부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절차를 거쳐 대기업 해외 대관 파트에 합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정일 전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올해 2월 SK그룹의 신생 계열사인 SK스퀘어로 이직했다. 또 지난 1월에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맡아온 윤요한 과장이 두산그룹 두산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경제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한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 무역수지 악화, 신(新)통상 패러다임 전환 등 만만치 않은 대내외 환경에 노출된 만큼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부도 인력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출신인 한 원로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는 등 국제 통상 환경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며 “관료 이탈 문제를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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