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에너지 효율화'로 가는데..관련 예산 500억 줄인 한국

김정수 2022. 6. 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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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와기후]IEA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악 위기
에너지 효율화가 가장 시급한 해결책"
전문가 "효율화 위해 전기료 인상 필요"
2021년 여름철 전력수급비상계획 기간 중 전남 나주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의 모습.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효율화를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의 첫 번째 연료’라며 각국 정부에 적극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제공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효율화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의 첫 번째 연료’로 불린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정책 가운데 어떤 정책보다도 우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줄인 에너지보다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된 전 세계 에너지 공급 위기를 맞아 에너지 효율화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에너지 효율화에 투자하는 예산을 오히려 줄이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올해 에너지 효율화를 포함한 에너지 수요관리 예산은 5587억7900만원으로 지난해 예산(6116억1700만원)보다 500억원 이상 줄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덴마크 쇠네르보르에서 7일부터 9일(현지시간)까지 에너지 효율을 주제로 연 컨퍼런스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긴급 조처의 가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각국 정부에 에너지 효율화에 더욱 적극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파티 비롤 IEA 집행이사는 8일 보고서를 발표하며 “에너지 효율화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에 대한 중요한 솔루션인데도, 정부과 기업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IEA는 이 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집약도 개선 속도를 지금의 연간 2%에서 4%로 두 배 늘릴 것이 요구된다”며 “이렇게 하면 현재 중국의 최종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 연간 95EJ(엑사줄·1줄의 10억배의 10억배)의 에너지 소비를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집약도는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당 이용되는 에너지의 양으로, 에너지 효율성의 핵심 척도다.

보고서는 이렇게 에너지 집약도를 개선하면 인구와 생활 수준이 향상돼도 세계 최종 에너지 수요는 2030년까지 지금보다 5% 가량 줄어, 매년 6500억달러(약 816조원)의 가정 에너지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고 밝혔다. IEA는 세계가 이런 에너지 고효율 경로로 갈 경우 2030년까지 매년 5Gt(기가톤·1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산화탄소 5Gt은 아이이에이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30년까지 매년 요구되는 이산화탄소 감축량의 약 3분의1에 해당한다.

IEA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악화된 최근의 세계 에너지 공급 위기를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가장 큰 에너지 위기로 보고 있다. 비롤 집행이사는 “1970년대의 오일 쇼크는 에너지 효율화에서 큰 진전을 촉발했다”며 “에너지 효율화가 지금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 대응에서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수요 관리를 포함한 에너지 효율화는 한국의 역대 정부도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정부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5년 단위의 ‘에너지 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산업체에 에너지 절약시설과 고효율 설비 구축을 유도하고, 노후 건축물의 단열을 지원하고, 가전 등 전기 제품의 에너지 효율기준과 자동차의 연비기준을 강화하는 것 등이 이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돼 온 것이다. 이 계획은 현재 6차 계획(2000~2024년)까지 수립돼 이행되고 있지만 한국의 에너지 효율화 수준은 여전히 주요 경쟁국들을 크게 밑돈다.

지난 제5차 기본계획(2013~2017년)은 계획기간 마지막 해인 2017년의 최종 에너지 소비 목표를 기준수요인 2억2750만TOE(석유환산톤) 대비 4.1% 감축한 2억1820만TOE로 잡았다. 그러나 실제 소비량이 2억3000만TOE으로 늘어나며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국내총생산 100만원당 에너지 소비량으로 표현되는 에너지 효율화 지표인 에너지 원단위는 0.172TOE까지 내려가며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3위의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에너지 집약도를 기준으로 보면, 유엔 경제사회국(DESA) 에너지 통계의 최신년도인 2019년 한국의 에너지 집약도는 5.3MJ(백만줄)로 일본(3.3MJ), 독일(2.7MJ), 영국(2.3MJ) 등의 약 두 배에 이른다. 에너지 효율화 정도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미국(4.5MJ)은 물론 세계 평균(4.6MJ)보다도 낮다.

한국의 에너지 효율화 수준이 낮은 것에는 정부가 2차 에너지인 전기요금을 OECD 회원국 최저 수준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에너지 효율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한국은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이어서 서비스업 중심인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 원단위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1차 에너지를 쓰면 되는 가열이나 건조 공정 등에 2차 에너지인 전기를 쓰는데 따른 에너지 효율 손실도 엄청나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가격 신호로 그런 비효율을 개선하면서 일본과 같이 저효율 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하는 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에너지 효율화를 지원하기 올해 예산이 전년보다 500억원 이상 줄어든데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애초 예산은 지난해 보다 약간 많았는데 추경에서 좀 감액되면서 그렇게 바뀌었다”며 “새 정부에서도 에너지 효율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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