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떠나가신 듯" 보내기 힘든 팬·이웃들 '추모 물결'
내 이웃, 내 부모 같았던 송해 씨를 시민들은 떠나보내기가 어렵습니다. 추모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매일 오가던 서울 낙원동 일대에서 송씨에 대한 기억들을 들어봤습니다.
이해선 기자입니다.
[기자]
지하철 출구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건 고 송해 씨의 웃는 얼굴입니다.
지나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문구를 남깁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매일 송 씨가 오가던 길입니다.
30년 전 송 씨는 근처 건물 3층에 사무실을 마련했고 낡은 이 공간에서 방송과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한 팬이 이 사무실 문 앞에 근조 글씨를 써 붙였습니다.
닫힌 문 손잡이엔 팬들이 편지를 끼워 넣었습니다.
[송해 씨 팬 : 국민들에게 항상 기쁨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려고 해서… 돌아가신 것에 대한 마음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과 똑같은 그런 마음이죠.]
송 씨가 방송하기 전 들리던 단골 이발소.
오랫동안 송 씨 머리를 만져온 이발사는 이별을 못 믿습니다.
[김효정/금메달 이발소 사장 : 깜짝 놀랐어요. 제가 직접 못 보고 손님이 말씀을 하셔서 '아 설마' 했는데 방송에 나오더라고요. 너무 마음 안 좋고 눈물 나더라고.]
송해길이라고 붙인 지명처럼 지역 전체가 송 씨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했습니다.
사정 어려운 주민들이 청하면 밥값 술값 선뜻 내주던 이웃이었습니다.
어른이 사라진 지금 시대에 지역 주민들을 챙기는 말 그대로 어르신이었습니다.
[강희순/원조 소문난집 국밥 전문 직원 : 아 가슴이 아프지. 가슴이 아파. (여기서) 사람들 모시고 와서 자기 돈으로 대접시켰어요.]
항상 그 모습일 것 같던 송 씨는 팬데믹 뒤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평생 해오던 일을 못 하게 되면서 버틸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상희/마산 아구찜 사장 : 야외 녹화를 못 하다 보니까 이 어르신이 약간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활동을 못 하다 보니까…]
매주 웃는 얼굴로 '전국 노래자랑'을 외쳤던 송 씨는 떠났지만 그 표정과 목소리는 팬들 마음 속에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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