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한 日帝 순사의 악행들


일제 앞잡이로 '칼' 차고 다니면서 조선인 통제 범죄혐의자 때려죽이고 부녀자 발가벗겨 능욕 독립운동가 체포해 고문하는 악질도 비일비재 믿는 '조직' 있어 해방 후에도 편안히 승승장구
우리 전래동화에선 우는 아이를 달랠 때 하는 말이 "호랑이 왔다. 울지 말아라" 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호랑이 대신 순사(巡査)로 바뀐다. "자꾸 울면 순사가 잡으러 온다"고 하면 우는 아이는 단번에 울음을 멈췄다. 호랑이만큼 무서웠던 순사 이야기를 찾아 100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921년 4월 23일자 매일신보에 '강경 따끔나리(순사) 등쌀에 못 살겠어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충남 강경에는 따끔나리(순사) 등쌀에 아무 노릇도 못하겠어요. 칼 찬 유세(有勢)가 그리 대단한지, 위풍(威風)이 등등한 것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앞섭디다."
기사 내용만큼 순사의 세도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1922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도 그렇다. "경찰 관리의 직책에 있는 자가 범죄 혐의자를 때려죽이고, 부녀자의 옷을 발가벗겨 난타하는 등 포학한 행동을 하는 자가 많고, 일개 순사로서 인민에게 행악(行惡)이 무소부지(無所不知)하다가, 형사 피고의 부녀자를 적신(赤身; 나체)으로 만들어 욕을 보이고, 10리씩 끌고 가는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악형(惡刑)도 있었으며, 형사나 정탐의 세(勢)를 믿고 회빈작주(回賓作主; 손님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함)를 하다가 죄에 걸리는 자도 있고, 순사가 노름꾼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징역하게 되는 일도 있으며, 최근에 춘천분감 같은 곳에서는 죄수를 몇 시간씩 난타해 죽이는 등 실로 악독한 범죄가 많은데…."
일제는 조선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 제도를 운영했다. 순사들은 칼을 차고 다녀 걸어다닐 때마다 철커덕 소리가 났다. 이 소리만 들어도 조선 백성들은 긴장했다. 순사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순사 시험 인기는 매우 높았다. 경쟁률은 항상 100대 1 이상이었다. 시험을 통과한 조선인들은 대부분 하위직 순사가 됐다. 이들 중에는 독립운동가를 체포해 고문하는 악질도 많았다. 물론 악행(惡行)도 비일비재했다.
1922년 4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악질 순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경기도 용인군 고삼면 월향리주재소 순사 김정환(金正煥)은 수원군 비봉면 청려리에 사는 이씨(李氏, 35)라는 과부가 관청에 매장 수속도 아니하고 낙태한 아이를 그대로 재(灰)속에 파묻은 것을 알고 이씨를 체포하여 백주(白晝) 대로(大路) 상에서 저고리만 입히고 아래 옷을 전부 발가벗겨 여러 사람 앞에 내세워 무수한 욕을 보이고, 백양목 단장으로 음부를 찌르면서 '너 같은 년은 이런 욕을 당해 마땅하다'고 악행을 한 후, 다시 벗은 몸을 20리나 끌고 가다가 용인경찰서 근처에 가서 강제로 옷을 입혀서 서장 앞에서는 천연히 보통 죄수와 같이 잡아온 듯 보고를 하였으므로…."
만행을 벌이다가 파면된 순사 기사도 눈에 띈다.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천수리 주재소 순사 양응선(梁應善)은 얼마 전에 그 동네 강선학(姜善鶴)의 제수(弟嫂) 되는 김씨(金氏)란 여자를 유인하여 간통하고자 하다가 본부(本夫)에게 발각되자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권총을 꺼내 위협한 후…(중략)…어떤 밀매음녀와 같이 새벽 1시가 넘도록 노래를 부르고 야단을 치며 그 집에 유(留)하는 손님들과 근처 집까지 잠을 들지 못하게 하다가 결국 며칠 전에 파면을 당하고 말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산촌벽지(山村僻地)에 종종 있는 일이므로…."(1922년 5월 19일자 동아일보)
1922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는 여성의 음부에 악형(惡刑)한 순사의 금수(禽獸) 같은 행동을 담고 있다. "평남 맹산 경찰서 애창주재소에서 도순사(道巡査)로 근무하는 한재평(韓在平)은 항상 인민에게 포학한 행동을 하므로 각 처 인민의 불평이 날로 늘어가던 바…(중략)…'너는 조선 독립운동의 혐의가 있다'고 위협하며 현금 100원을 편취한 일이 있다는 한재평에 관한 투서 한 장이 있었는데, 한재평은 관내에서 거주하는 인민을 비밀리 호출하여, '투서한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하고 구타하며 조사하는 동시에, 문곡리 주원도(朱元道)의 집에서 동네 사람 박승제(朴承濟)를 무수히 난타하고 다시 그의 처 이씨(李氏)를 불러 의복을 벗기고 불로 하문(下門)을 지지며 여러 사람이 보는 중에 욕을 보였으므로…."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만 봐도 순사의 악행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눈에 파악된다. '순사가 노파를 구타'(1921년 5월 12일자 매일신보), '인처(人妻; 다른 이의 아내)를 능욕(凌辱)한 순사'(1921년 10월 2일자 매일신보), '대검(帶劍)으로 인민을 난타'(1921년 10월 23일자 매일신보), '부녀를 난타한 불법 순사'(1921년 11월 26일자 매일신보), '안악경찰서 순사의 참학(慘虐)한 불법고문'(1921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 '순사의 양민 총살'(1922년 5월 6일자 동아일보), '순사가 체부(遞夫; 우편집배원)를 난타해 중상(重傷)'(1922년 5월 8일자 매일신보), '순사가 발검(拔劍)하여 양민의 배를 찔러' (1922년 5월 9일자 동아일보).
해방이 됐지만 그들은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그들을 좌파세력을 잡는 경찰로 탈바꿈시켰다. 일제시대 '고문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노덕술은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했고 1968년 서울대 병원에서 편안히 운명했다. 헌병보조원으로 시작해 해방 후 국군 특무대장에 오른 김창룡은 '대한민국 건국영웅'으로 불린다.
순사가 이렇듯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악한 성품도 원인이겠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것이다. 조직의 힘을 믿고, 또한 그런 악행을 덮어줄 수 있는 조직과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그런 악행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을까. 100년 전 그런 악행이 지금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힘없고 약한 백성의 눈물은 언제나 마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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