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기 저주파 소음피해' 첫 배상결정.. 文정부 때 마을 옆으로 설치장소 무단변경

박상현 기자 2022. 6.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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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한 소음 때문에 고통받은 지역 주민에게 사업자가 피해 배상을 하라는 첫 정부 결정이 나왔다.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2020년 11월 전남 영광군 마을 주민 163명이 풍력발전사업자 영광풍력발전을 상대로 제기한 저주파 소음 피해 사건에 대해 사업자에게 1억38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중조위가 풍력발전기 저주파 소음에 대해 피해 배상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광풍력발전은 산업부 산하 공기업 한국동서발전과 민간 업체 유니슨·대한그린에너지 등이 함께 만든 SPC(특수목적법인). 영광군 일대에 80㎿(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35기를 짓고 2019년 초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9년 4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현장을 찾아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부작용을 없애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축사까지 한 곳이다.

그런데 시운전이 시작된 2018년 9월부터 주민들은 줄기차게 지자체에 소음 피해를 호소해왔다. 영광에서 수십년 살아온 주민 163명은 2020년 말까지 군청과 사업자 측에 “풍력발전기 소음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머리가 어지럽다” “잠이 안 온다” 등 민원을 제기했다. 이들이 피해를 호소한 저주파 소음은 풍력발전기 모터에서 나는 ‘윙’ 소리, 날개(블레이드)가 바람을 가를 때 나는 ‘쉑’ 소리 등 100㎐(헤르츠) 이하다. 민원을 아무리 넣어도 바뀌는 게 없자 주민들은 2020년 11월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중조위에 분쟁조정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사업자 측은 “풍력발전기 건설 공사 전과 상업운전 초기 주민 대표들에게 지역발전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중조위는 작년 12월 중순 소음 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겨 해당 풍력발전기 저주파 소음도를 측정했다. 기준 주파수인 80㎐에서 마을 한 곳은 최대 85dB(데시벨), 다른 곳은 최대 87dB이 나왔다. 둘 다 중조위 환경피해 인정 기준인 45dB을 초과하는 수치다. 중조위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소음”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주파수(12.5~63Hz)에서 측정한 값도 모두 기준치를 초과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는 2016년 6월 환경부가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의견에서 “주거 지역에서 1.5㎞ 이상으로 최대한 떨어져 풍력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 기준을 냈지만 이를 따르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중조위 관계자는 “이격 거리를 지키지 않아도 소음 기준치를 넘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사업자가 당초 계획에서 일부 발전기 위치를 무단 변경한 정황도 발견됐다. 현재 주민들에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는 발전기는 35기 중 1~3호에 해당하는 3개. 이 발전기들은 당초 마을에서 먼 백수읍에 설치하기로 했다가 2017년 9월 위치가 바뀌었다. 사업자 측은 이 땅이 이미 다른 사업자가 사들인 곳이라 대체지를 찾다가 마을에서 불과 300~500m 떨어진 곳으로 변경했다. 중조위 측은 “사업 계획이 바뀌었는데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 보고나 신고한 정황은 없었다”면서 “설치 장소 변경에 따른 추가 환경영향평가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사업자는 이에 대해 “마을 주민 동의서를 받았다”고 소명했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동의해준 데다 일부에게만 설명한 걸로 알려졌다. 중조위 측은 “주민 동의서를 받았더라도 소음 피해가 발생한다는 걸 주민들이 알았다면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일부에선 사업자 중 1곳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동서발전)이란 점을 들어 당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던 풍력단지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벌어진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 정부는 “2030년까지 12GW 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7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중조위에 접수된 풍력발전 소음 피해 신청은 영광군이 유일하다. 하지만 2016~2021년 사이 풍력 발전 용량이 2배 이상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분쟁 조정 신청이 추가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최근 강원 양양군과 제주도에선 각각 양양수리풍력발전단지와 한림해상풍력단지가 주민 의견을 무시한 채 사업이 진행됐다며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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