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명 수용한 천주교 순교자의 비전, 개도국에 영감 줄 수 있어”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을 ‘문명충돌 전야(前夜)의 선각자’라는 틀로 조명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국제개발금융 전문가 설지인(40)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이 쓴 ‘하늘의 신발’(박영사)이다. 설씨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옥스퍼드대·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유학하고 OECD와 아프리카개발은행 등에 근무하며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발전을 도와온 전문가.
설씨가 천주교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좇은 것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계기가 됐다. 교황방한준비위 업무를 도우며 124위(位) 순교자 시복식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국제기구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어요. 결과는 나라별로 달랐습니다. 지도층이 어떤 비전을 가졌느냐에 따라 갈렸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18세기 조선에서 처형된 이 인물들이 꿈꿨던 세상과 비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씨가 이 책에서 다룬 인물은 이벽·이승훈·강완숙·황사영과 이순이·유중철 부부 그리고 김재복(김대건 신부) 등이다. 주문모 신부가 ‘회장’을 맡길 정도로 투철한 신앙과 대담한 추진력을 갖췄던 강완숙, 동정(童貞) 부부였던 이순이·유중철처럼 일반적으로는 덜 알려진 인물도 다뤘다. 설씨는 이 인물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기존 세계관을 뛰어넘는 안목을 가졌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선이 소중화(小中華)가 아닌 서양 국가들과 동격의 나라로서 새로운 문명권으로 진입하기를 꿈꿨다는 것.
설씨는 특히 황사영에 대해 ‘외세 침략을 유도하려 한 반역자’라는 선입견을 넘어 재평가한다. 설씨에 따르면 황사영은 청나라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 새로운 황제(교황)가 있는 서양과의 연결을 꾀한 인물이었다. 백서에서 중국 연호가 아닌 ‘천주 강생 후 1801년’ 즉 서기(西紀)를 쓴 것도 기존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 이들의 꿈이 좌절한 것은 단순히 종교 탄압을 넘어 조선이 서양의 지식과 문화, 과학기술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안으로부터 진보할 수 있던 가능성이 짓밟힌 사건이라는 것이다.
설씨는 집필을 위해 사료를 뒤지는 한편 순교자들의 무덤과 유적을 답사하며 그들이 마주한 상황을 느껴보려 애썼다. 자료 조사 외에 집필에만 1년 3개월이 걸렸다. 그는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좇는 과정이 “아름답게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쓰는 내내 우리의 모습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로 선진국 문턱에 서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사적 전환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요? 우리 안에 벽은 없을까요? 200년 전 순교자들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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