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나라당 지지자냐" 軍진상위원장, 천안함 재조사 실무자 압박했다

조백건 기자 2022. 6.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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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이하 진상규명위) 위원장이 작년 초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를 머뭇거리던 실무자에게 “너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지지자냐”며 재조사를 압박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최근 감사원은 천안함 사건은 원인이 명확해 재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이 전 위원장이 부당하게 재조사를 지시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임명한 이 전 위원장은 진보 성향 변호사 모임인 민변 출신이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해온 신상철씨는 2020년 9월 ‘북한 소행’으로 이미 결론난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해달라는 진정을 진상규명위에 냈다. 이 전 위원장은 진정인 자격도 없는 신씨의 진정을 수용해 그해 12월 이 사건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당시 진상규명위의 천안함 재조사 담당 과장이었던 A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재조사 결정이 난 후인 작년 2월 19일, 월례 정기회의에 상정할 안건을 보고하러 이 전 위원장을 찾았다”며 “그는 이 자리에서 ‘천안함 재조사가 왜 진행이 안 되느냐. 너 한나라당 지지자냐.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느냐’고 질책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위원장이 ‘(기존 결론을) 뒤집을 만한 게 꼭 안 나와도 내년(2022년) 대선 이후에 (진상 규명) 불능 처리를 할 수 있으니 일단 재조사를 하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5국 70여 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이 2010년 ‘북한 어뢰 공격으로 폭침됐다’고 결론 낸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 배경에서 재조사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A변호사는 “천안함 사건은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해 결론을 내린 사건”이라며 “전문성도 부족하고, 한 사건에 조사관 한 명을 배치하는 진상규명위가 해결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이 사건의 진정은 신씨가 자기의 형사 소송(명예훼손)에서 유리한 자료를 얻기 위한 소송 용도라는 얘기가 위원회 안에서도 돌았다”며 “신씨가 대법원 판결을 받으면 진정을 취하할 것이란 생각도 들어 재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씨는 천안함 좌초설을 퍼트렸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현재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위원장은 본지에 “담당 과장에게 ‘대선 때 누굴 찍었느냐’ 그런 말들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천안함 사건은 어려운 사건이니 과장이 직접 관련 판결문과 자료들을 보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의 한 간부는 “작년 2월 A 전 과장이 찾아와 ‘이 위원장으로부터 한나라당 지지자냐는 폭언을 들었다. 사표를 내고 국가인권위에 이 문제를 진정하겠다’고 해서 겨우 말렸다”고 했다. 이 위원회의 탁경국 상임위원도 지난달 30일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천안함) 유가족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재조사 결정을 하자고 제안했는데도 이 전 위원장은 ‘그럴 법적 의무가 없다’고 했다”며 “재조사 결정 후 위원장은 사건을 배당받은 조사과장(A변호사)에게 어이없는 결론을 정해주며 닦달했다. 조사과장이 사표를 내느냐 마느냐 했다”고 했다. A변호사는 2020년 9월 진상규명위 과장으로 입사했다가 올 2월 퇴사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이 전 위원장의 직권남용 소지가 상당하다”고 했다. 이 전 위원장이 관련법상 재조사를 할 수 없는 천안함 사건의 재조사를 결정하고 이를 머뭇거리던 A변호사를 압박했다면, 이는 상관이 부하 공무원에게 ‘의무 없는(위법한) 일’을 시켰을 때 성립하는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천안함 유족은 작년 5월 이 전 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으나 경찰은 13개월째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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