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걷는 내가 부러워? 그럼 너도 다리 잘라" 그녀가 연적에게 해준 말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6. 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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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36]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나이, 재력, 외모 등 세상에서 말하는 '조건'이 크게 차이 나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결합하면 뒷말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둘의 관계에 사랑이 아닌 무엇인가가 놓여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곤 한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두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하는 요소다. 특히, 특정 조건을 덜 갖췄다고 평가 받는 쪽은 사랑이 아닌 무언가로 상대방 마음을 샀을 것이란 오해에 시달리다 관계에서 이탈하게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자기 앞으로 불쑥 나타난 조제에게 쓰네오는 호기심을 느낀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걷지 못하는 여성 조제(이케와키 지즈루)가 누구보다도 건강한 남자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를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쓰네오는 잘생기고 쾌활하기까지 해 인기가 많다. 조제와 함께 다니는 쓰네오를 보고 사람들은 "기특하다" "봉사 정신이 투철하다" 같은 말을 건넨다.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 대신 말이다.
잘생기고 쾌활한 쓰네오는 이성에게서나 동성에게서나 인기가 많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어느 날 생각 없이 걷다가 조제를 만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대학교 4학년생 쓰네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조제를 만나며 시작된다. 조제의 할머니가 그녀를 태우고 다니던 유모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오면서다. 쓰네오는 사회와 완전히 차단돼버린 채 책만 읽고 자란 조제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떠오르고, 그녀가 해주는 밥이 생각 나 조제의 집을 찾는다. 애인이었던 가나에(우에노 주리)와 헤어지고 조제와 연애하게 된다.
조제가 탄 유모차는 어느 날 쓰네오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온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쓰네오는 조제에게 세상을 보여준다. 유모차 뒤에 스케이트를 연결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만든다. 할머니의 유모차가 외부에서 안을 들여보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면, 쓰네오의 유모차는 외부에 열려 있다. 조제가 바깥 세상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조제를 볼 수 있다.
쓰네오는 조제를 데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네 장애가 부럽다" … "부러우면 너도 다리를 잘라"

할머니도 조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다만 쓰네오와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할머니는 혹시나 조제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세상과 차단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며 담요로 꽁꽁 싸맨 유모차를 조심스럽게 밀고 다녔다. 하지만 쓰네오는 밖으로 열려 있는 유모차를 누구보다도 힘껏 민다. 그러다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고 조제도 밖으로 튕겨 나간다. 상처 입을 가능성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녀가 세상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쓰네오가 조제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쓰네오는 조제를 업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 지치기도 한다. 자신이 그것을 평생 감당할 수 없단 사실을 어렴품이 짐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멈추는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쓰네오의 옛 연인인 가나에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던 자신과의 관계를 깨고 찾아간 상대가 걷지 못하는 조제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어느 날 상처를 주기로 마음 먹고 조제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세상에서 두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알려준다. 조제의 다리를 보며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럽다"고 말한다. 쓰네오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동정일 뿐이라고 연적에게 대놓고 말한 것이다. 조제는 망설임 없이 맞선다. "그럼 당신도 다리를 잘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머물며 책만 읽는 조제는 생각이 많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걷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아닌, 조제를 사랑했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과 '조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가나에는 건강한 쓰네오가 조제를 사랑할 리 없다고 믿는다.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조건이 비슷한 두 사람 사이에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아닌 것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건 '무기'를 쓴 거나 마찬가지인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가나에는 연적이 반칙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무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조제에게 "장애인 주제에" 같은 말을 주저함 없이 던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무서운 것을 같이 보고 싶었던 조제는 쓰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간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조제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본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쓰네오를 보고 '착한 청년' 같은 말을 툭툭 던질 때마다, 책을 많이 읽은 조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면 내 옆에 있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깊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삶의 조건이 다른 두 사람이 결합할 때, 그 안에 놓이는 심리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처럼 보인다.
조제의 집엔 남이 버린 책이 가득하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왜냐면 쓰네오는 세상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모두 좋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쓰네오는 세상의 장애인을 모두 찾아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조제를 찾아와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럼 당신도 다리를 자르라"는 조제의 말은 '너도 다리를 잘라서 사랑을 받으라'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네가 다리를 자른 뒤 쓰네오가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지 확인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향한 쓰네오의 사랑이 동정심뿐이라는 네 논리를 입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조제는 쓰네오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서로 사랑하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할 뿐이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그렇기에 조제는 쓰네오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쓰네오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감정이다. 사람의 감정은 동정심, 사랑, 우정같이 하나로 딱 떨어지게 정의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 쓰네오는 조제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면서, 또 그녀의 엉뚱한 매력에 빠져 들고, 어느 정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섞은 형태로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제를 업고 쓰네오는 그녀에게 바다를 보여준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사랑이 진심인지를 온전히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영화는 남의 사랑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드는 것이 때로 무의미한 행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비장애인인 쓰네오가 장애인인 조제와 사귄 게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듯, 젊은 사람이 나이 든 부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 아닌 재산이 만든 결합이라고만 해석하기도 힘들다. 세상의 나이 든 부자와 전부 결혼한 것이 아닌 '그 사람'과 결혼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덤덤하게 이별한다.<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그렇다면 쓰네오가 끝내 조제를 떠난 이유도 조제의 걷지 못함에 있다고만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걷지 못함은 쓰네오가 떠난 결정적 원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 커플도 둘 사이 관계에서 동력이 다하면 헤어지듯, 장애-비장애 커플도 그저 지쳐서 결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이 반드시 한쪽의 조건이 부족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김종관 감독은 `조제`라는 제목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했다. 남주혁과 한지민이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사진 제공=워너 브러더스 픽쳐스>
조제는 쓰네오가 자신과 왜 만났는지, 왜 떠났는지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쓰네오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껴질 때 충분히 사랑받고, 본인도 그에게 사랑을 돌려줄 뿐이다. 쓰네오가 떠난 뒤에는 그 사랑이 남기고 간 온기를 품고 산다. 이전까지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던 조제의 삶은 열기구처럼 가볍게 위로 떠오른다. 도와주는 이 없이는 쓰레기도 못 버리던 그는 이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장을 봐 식사를 준비한다. 상처를 주고받을 게 두려워 두 사람이 만남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런 변화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제는 오늘도 일상을 살아간다. 쓰네오가 사실 자신의 장애 때문에 떠난 것인지, 자신은 장애 때문에 평생 사랑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생각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포스터.<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장르: 로맨스·드라마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쓰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지즈루, 우에노 주리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팝콘지수(91%)
※2022년 6월 3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왓챠, 쿠팡플레이, 웨이브,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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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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