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거절은 언제나 아프다

거절은 언제나 아프다. 특히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인간들의 경우 실험실 상에서 약 2분만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도 자존감이 뚝 떨어지고 행복감과 삶의 의미감 마저 떨어지는 등 사람으로부터 거절되는 경험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경험 중 하나이다. 그러서 그런지 사람 사이에서 겪는 슬픔과 좌절들에 대해 “상처 받았다”, “아프다” 같은 표현들을 흔히 쓰곤 한다.
이렇게 형태도 없는 거절이 아픈 이유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사랑과 인정은 행복과 건강에 있어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뼛속 깊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사랑과 인정의 수급이 불안정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들(사람들의 차가운 반응, 거절 등)은 마치 식량이 부족할 때와 같은 두려움, 또 배고픔과 같은 직접적인 고통을 불러오고 마는 것이다.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배고픔을 겪는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랑과 인정에 대한 목마름 또한 익숙해지기 어려운 고통이다.
특히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서 잘 하고 싶은 일처럼, 나의 가치를 전부 걸고 있는 영역에서 거절당하고 무시하당하는 경험은 뼈아프다. 예컨대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퍼포먼스를 보인 후 심사원으로부터 가차없는 비판을 들으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차갑게 식듯이, 대놓고 너는 별로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듯한 평가를 받으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자신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 뿐 아니라 실험실 상에서 시켜서 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가짜 테스트에서도 “네가 무능해 보여서 다른 참가자들이 너와 함께 과제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너지고 만다.
이렇게 타인으로부터의 차가운 평가란 언제나 무섭기 마련이다. 우리의 사회적 가치와 자존감은 상당부분 타인의 평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중요한만큼 좋은 평가를 받을 기회를 망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늘 과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평가에 대한 과한 두려움이 새로운 도전을 막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은 경험들이 다들 한 두 가지 씩은 있을 것이다. 노래를 정말 좋아하지만 노래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노래 교실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 발레를 배워보고 싶지만 너무 못할까봐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지인 등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가상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꼼짝 못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연구자들의 경우 자신이 온 열정을 바쳐 한 연구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논문으로 내보이면서 평가받는 일이 일상이다. 지인 한 명은 학계에 있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학생은 과제를 내주기 때문에 싫어하고 다른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비판하느라 바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움 받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학계에 오래 계셨던 선생님께 이렇게 거절이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정적 평가에 덜 흔들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선 점점 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다른 학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영향력을 덜 발휘하게 되고 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덜해진다고 했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권력이란, 이렇게 타인의 평가에 ‘덜’ 영향 받을 수 있는 힘이다. '지위가 올라가는 것=평가 받지 않을 힘=권력'인 셈이다.
또한 무엇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타인의 평가가 진짜 중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예컨대 중요한 심사를 받는 순간에는 평가가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 예컨대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이 안 좋은 얘기를 한 마디 했다고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일은 덜 일어난다고 했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눈 앞의 상대방이 나를 좋게 봐줬으면, 내 가치를 높게 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바람과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만 노력하는 습관을 터득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생각보다 어떤 사람의 평가가 내 삶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상황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흔한 쪽팔림들은 사실 내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미래가 바뀌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정말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평가의 상황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늘상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 또한 없는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도 그냥 나의 습관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상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이 굳어 올 때, 이것이 진짜 두려워해야 할 상황인지 아니면 별 중요치 않은 상황인지 자문 것만으로도 우리는 불필요한 두려움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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