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산수학 난제 해결한 교사 출신 수학자

손인하 기자 2022. 6.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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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박진영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교수는 6장짜리 논문으로 이산수학 난제를 풀어 최근 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는 특히 수학 교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박 교수는 6년 반 동안 수학 교사로 바쁘게 지내다 2011년 남편이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교사를 그만뒀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지만,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수학을 대학원에서 더 배워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교사라는 이력밖에 없다 보니 대학원 입학은 쉽지 않았다. 탈락 메일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미국 럿거스대 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위기가 찾아왔다.

“원래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편이 아닌 데다 대학에서 공부한 지 10년이 지나 대학 수학을 잊었던 거예요. 게다가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수학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도 없었어요.”

세부 전공을 정하지 못하던 박 교수는 우연히 확률조합론의 대가인 제프 칸 수학과 교수의 수업을 들은 뒤, 차츰 방향을 잡아 갔다.

“칸 교수님은 정말 잘 가르치시고, 학생들을 카리스마 있게 이끄세요. 그런 교수님의 확률조합론 수업을 듣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예요. 어느 날 교수님께 달려가 ‘확률조합론을 꼭 전공하고 싶다’면서 지도 교수를 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칸 교수의 제자가 됐다는 설렘도 잠시, 박 교수는 연구 성과를 빨리 내지 못해 좋은 수학자가 될 자질이 본인에게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 큰 위안을 준 것도 칸 교수이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칸 교수는 남보다 늦게 수학과 박사가 된 편이라 비슷한 처지의 박 교수를 잘 이해했다.  칸 교수는 “빨리 결과를 내는 것보다 깊게 공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다독였다.

깊게 공부하니 풀린 칸  칼라이 추측

박 교수가 해결한 난제도 칸 교수과 관련 있다. 2006년 칸 교수는 길 칼라이 이스라엘 히브리대 수학과 교수와 함께 이 난제를 고안했다. 이 난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임곗값’을 알아야 한다. 어떤 값을 기준으로 물질이나 구조의 상태가 확 달라지는 ‘상전이’가 일어나는 값이 ‘임곗값’이다.  예를 들어 물이 0℃보다 낮아지면 물에서 얼음으로 그 구조와 성질이 급격히 변하는데 여기서 물에서 얼음으로의 변화가 ‘상전이’, 0℃가 ‘임곗값’인 셈이다.

“칸과 칼라이 교수는 실제 임곗값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 임곗값’을 구하는 방법을 제시했어요. 그리고 이 기대 임곗값이 실제 임곗값과 가까우리라 추측했습니다. 저는 이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어요.”

박 교수의 연구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칸-칼라이 추측을  참이라고 증명했디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수학자가 칸-칼라이 추측을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박 교수와 후이 투안 팜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생은 하룻밤 만에 추측을 증명할 아이디어를 얻고, 논문을 쓰는 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 교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하루아침에 절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2019년 여름부터 칸-칼라이 추측과 관련한 여러 문제를 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 문제를 풀 때 쓴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하면 ‘칸-칼라이 추측이 풀리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진짜 풀렸어요. 보통 수학자는 한 문제를 풀 때 몇 년에 걸쳐 생각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논문을 보고, 강의도 들어요. 동료들과 토론해서 한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안 되면 다른 아이디어를 계속 시도합니다.”

박 교수는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수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살지 않아요. 가족과 나들이 가기, 영화 보기처럼 매일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죠. 수학도 문제를 푸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서 선택했어요. 물론 임곗값을 정확히 알아내는 법을 찾고 싶긴 합니다.”

박진영 교수 이력

2005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졸업

2005~2011 용강중, 세종과학고 수학 교사

2020 미국 럿거스대 박사

2020~ 2021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연구원

2021 ~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연구 조교수(연구 분야 극단 및 확률조합론, 그래프 이론)

 

※관련기사

수학동아 6월호, [인터뷰] 이산수학 난제 해결한 수학 교사 출신 수학자 

[손인하 기자 cown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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