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년 남은 대법원장의 조급함

윤주헌 기자 2022. 6.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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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20일 열린 ‘대법관 워크숍’에서 13명의 대법관을 상대로 ‘대법관 증원’과 ‘상고심사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요지는 상고 사건이 너무 많으니 지금까지 대법원에 냈던 상고이유서를 고등법원에 제출하도록 해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을 줄이고, 대법관 수를 늘려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의사 결정 과정에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법행정자문회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회의의 의장은 김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장 직속인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이 회의에서 이 안건이 진행되는 과정 전반을 챙겨왔다. 김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접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2.05.30 사진공동취재단

상고심사제는 3심제에 익숙한 국민들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부분이다. 대법관을 몇 명 증원한다고 해서 사건 처리 속도가 빨라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방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법원조직법 등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상고 사건 증가로 인한 문제점이 수년간 지적됐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던 이유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김 대법원장의 사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대법원장이 추진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사안도 중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장이 임기 동안 뚜렷하게 이룬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 대법원장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도 법원 내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법관들 사이 경쟁 분위기가 없어지면서 ‘6시 정각 퇴근 판사’가 생겨나고, 능력 있는 판사들이 법원을 떠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국민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게 되는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법조계 일반의 평가다. 김 대법원장이 이번 제도 개선을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임기를 끝내기 전 무엇이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법원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8월 신임 대법원장으로 지명을 받고 당시 근무지였던 강원도 춘천에서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대법원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나는) 31년 5개월 동안 재판만 했다”면서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 그가 스스로 국민과 법원에 무엇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섣불리 사법제도에 손대지는 않았으면 한다. 임기가 정해진 대법원장은 금세 물러나지만 한번 어긋난 사법제도를 고치는 데엔 더 긴 시간과 희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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