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별로 소유한 것이 없는 사람들 이야기

2022. 6. 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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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욕망과 잇따른 사업 실패
아버지와 가족의 좌절에 슬픔이

셔우드 앤더슨, <달걀> (‘창비세계문학’ 미국 편에 수록, 한기욱 엮고 옮김, 창비)

타인 앞에서 내 아버지가 낭패를 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조경란 소설가
“나의 아버지는 확실히 천성적으로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고, 나라는 아들을 낳고부터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껏 관심이 없었던 야망, 혹은 성공의 욕망을 바라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추겨 양계(養鷄)를 시작했다. 거기서 소년으로 자란 나는 ‘삶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을 갖게 된다. 참담한 실패라는 인상의. 병아리들은 병으로 죽거나 해충으로 고생하거나 부화하지 못한다. 나라는 아들, 소년은 그런 닭들을 돌보고 어울리면서 양계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말수도 없으며, 잠깐만 기분이 좋아질 때도 그것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양계 사업이 실패로 끝난 후 그들은 가진 모든 것을 짐마차에 욱여넣고는 출세의 여정을 시작할 새 장소를 찾아 떠난다. 나는 그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짐 중에서 어렸을 때 쓰던 유모차를 발견하곤 이런 진술을 한다. “별로 소유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붙든다.” 이 단편소설을 읽으면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생기는데 그 하나다. 매번 이 단편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 문장 앞에서 거의 넘어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아마도 어렸을 적에 나도 이와 유사한 경험, 생각을 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 별로 소유한 것이 없다면 아마도 내 부모와 나는 앞으로도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별로 가진 것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어느 날부터인가 골목에 주차해 두는 아버지의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 앞 유리에 누군가 가래침을 뱉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일이라고,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하며 지나갔다. 그걸 아침마다 손수 닦고 출근길에 올라야 했던 나의 늙은 아버지에게는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아버지는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렀고 눈에 띄게 말라갔다. 급기야 범인을 잡는다고 어두운 현관에서 몸을 웅크린 채 밤을 지새울 때, 나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제발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라고. 그건 어쩌면 기도였을까. 아버지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데.

양계업에 실패한 <달걀> 속 아버지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철도역 근처에서 요식업을 시작한다.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두 번째 실패이다. 아버지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재치 있는 농담도, 알코올 유리병에 담아 둔 다리 네 개나 머리 두 개를 갖고 태어난 기형의 병아리를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는 어느 날 젊은 손님에게 달걀을 세워 보이겠다고 장담한다. 아버지는 거듭 시도하고 거듭 실패한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아버지는 병목이 좁은 빈 병에 달걀을 집어넣어 보이겠다는 시도를 한다. 그 젊은 손님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아버지를 비웃으며 가게를 떠날 때 아버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아버지가 시내에 사는 젊은 손님에게 낭패를 당할 때 사실 나는 어머니와 이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의 눈으로 그린 일인칭 시점인 데다 결정적인 순간에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아들은 이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없다. 그런데도 독자는 알게 되고 아들도 보지 않아도 말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때가 되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 단편소설이 처음 발표될 당시 제목은 <달걀의 승리>였다. 책을 묶으면서 작가는 제목을 <달걀>로 바꾸었다. 달걀의 승리. 한 번쯤은 무엇엔가 승리하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작고 위축된, 가족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승리하기를 꿈꾸는 수없이 많은 아버지도.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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