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삐라'의 추억과 대북전단의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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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경기 수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논과 들판이 꽤나 있는, 농촌적인 면모가 남아 있던 도시였다.
아직 반공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이라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삐라 내용을 절대 읽지 않고 학교에 갖다 줬다.
하지만 무수한 삐라 형태의 대북전단이 가져오는 효용보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더욱 격랑에 빠져들어 발생하는 안보비용이 더 크다면 공익의 방향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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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경기 수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논과 들판이 꽤나 있는, 농촌적인 면모가 남아 있던 도시였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막 입학한 1994년 무척 더웠던 여름이었다. 그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친구들과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잡는 일이 많았다.
그날부터 산과 들판을 헤집고 다니며 삐라를 주웠다. 반공정신은 상관없었다. 눈앞에는 공책과 연필만 아른거렸다. 그렇게 삐라 10장을 주워서 학교에 가져갔는데 이게 웬걸. 공책 대신 날아오는 것은 딱밤이었다. “야! 너는 공부하지 않고 이런 것만 주워오냐?”
그날 깨달았다. 세상의 이치는 10장이 10개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좀 더 어렵게 말하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효용의 법칙’ 응용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북녘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남쪽에서 넘어온 라면봉지 품질보증 문구에 자극을 받아 전투기를 끌고 귀순한 고(故) 이웅평 대령 같은 이도 있겠지만, 빈번한 대북전단이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의 귀순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북녘에 가족을 둔 한 탈북민은 “요즘 북한 주민들은 대북전단에 눈 깜짝하지 않는다. 전단 내용도 공감이 안 된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이 남쪽을 더욱 갈망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대북전단도 20세기의 ‘삐라’ 형태가 아닌 21세기의 ‘소프트파워’ 형태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전단이 다시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전단 내용을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도 포함됐다. 정녕 북한 주민을 위한 전단인지 한국 정부를 위한 것인지 다소 모호하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헌법에서도 인정하는 가치다. 다만 헌법상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공익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대북전단이 분명 일부 북한 주민에게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무수한 삐라 형태의 대북전단이 가져오는 효용보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더욱 격랑에 빠져들어 발생하는 안보비용이 더 크다면 공익의 방향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까.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대북전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 주민의 탈북 사유는 2010년대 들어 한국 문화와 교육, 미래에 매료된 점이 가장 많다. 이 같은 사실을 곰곰이 생각하면 좀 더 세련된 대북선전은 분명 있을 것이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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