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통령실 이름
“하늘은 복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나오는 말이다. 만물에 이름이 있기 마련이고, 이름이 있어 존재 가치를 가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름은 중요하다. <탈무드>는 “이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성경에도 “훌륭한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많은 재산을 택하는 것보다 낫다”는 구절이 나온다. “좋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절반을 성공한 것”이라는 독일 속담도 있다. 이토록 중요한 이름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과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 무던히 공을 들였다. 바르고 친숙하며 뜻깊은 이름을 짓는 게 숙제다.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 집무실의 새 이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전의 청와대는 파란 기와지붕의 건물 외양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새 집무실이 들어선 국방부 청사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이라 외관을 바탕으로 이름을 짓는 게 마땅치 않다. 미국 백악관, 프랑스 엘리제궁, 영국 다우닝가 10번지, 중국 중난하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스토리가 있지도 않다. 연방총리청, 총리 관저라고 일반적인 이름을 붙인 독일,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가나다순).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가 공모를 거쳐 3일 발표한 용산 대통령실 청사의 새로운 명칭 후보 5개다. 국민 선호도 조사 등을 거쳐 이 중 하나가 이달 중 새 이름으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고 어감도 나쁘지는 않아 어느 것으로 정해지든 무방할 것 같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 이전 때 강조한 소통 의지에 어느 이름이 가장 부합할지는 정부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탈청와대를 앞세워 부랴부랴 붙인 이름이 시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명순행(正名順行). 이름이 바르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공자의 말이다. 장소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고, 이름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생이 담긴다고 했다. 이름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이름은 허명무실(虛名無實)이다. 실체도 실속도 없는 헛된 이름은 오래지 않아 잊히고 만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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