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고 억울하고..그게 인간 세상[책과 삶]

백승찬 기자 2022. 6. 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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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문학동네 | 264쪽 | 1만5000원

김훈이 16년 만에 낸 두 번째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의 표제작은 충남 바닷가 호스피스 수도원의 나이 든 수녀들과 이들을 보살피는 신부들을 그렸다. 김루시아 수녀는 똥오줌 지리는 게 민망해 노구를 이끌고 직접 빨래한다. 젊은 장분도 신부가 걱정하자, 김요한 주교는 이렇게 답한다. “김루시아 수녀님의 빨래를 수거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인간의 예절이며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 우리는 원로 수녀님의 결벽과 수줍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김훈이 항상 그랬듯이, 이 소설집에 담긴 7편의 단편 역시 개념, 이념으로 표상되곤 하는 세상을 구체적 인간의 모습으로 안착시키려는 시도다. 개별 인간들의 세상에는 지린내, 비린내, 쉰내가 넘친다. 코 막고 고개 돌릴 일이 아니라, 그런 것이 인간 세상이다.

예를 들어 ‘명태와 고래’는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펴낸 방대한 종합보고서를 읽은 뒤 “두려움과 절망감 속에서 쓴 글”이다. 소설에는 물길에 밀려 원치 않게 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뒤 간첩 취급받고 삶이 망가진 어부가 나온다. 보고서의 사실들이 “이춘개는 출감해서 향일포에 온 지 두 달 뒤에 죽었다. 선착장에 묶인 배와 배 사이의 물에 빠져 죽었다”와 같은, 감정을 눌렀지만 어쩔 수 없이 새 나오는 문장으로 정리됐다.

작가는 소설집 말미 ‘군말’이라며 각 단편의 창작 배경을 밝혔다. “소설책의 뒷자리에 이런 글을 써 붙이는 일은 객쩍다”고 털어놓지만, 독자에겐 삶에서 얻어낸 작은 아이디어와 생각들에 어떻게 살이 붙는지 짐작하는 단서가 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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