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범벅을 팔아 번 돈으로 병원에 기부하면 착한 기업일까[화제의 책]
어카운터블
마이클 오리어리·워런 발드매니스 지음
이은주 옮김
도레미 | 500쪽 | 1만9000원
콘플레이크 시리얼로 유명한 켈로그는 1906년 설립된 ‘배틀 크리크 토스티드 콘플레이크 컴퍼니’에서 시작됐다. 미국 미시간주의 요양원 배틀 크리크에서 일하던 의사 존 하비 켈로그는 환자들의 식단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통곡물과 채소 위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콘플레이크를 개발해 동생 윌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콘플레이크는 대성공했고 비결은 설탕이었다. 설탕 첨가는 월의 아이디어였다. 재료의 3분의 1이 설탕인 콘플레이크는 오늘날 미국의 높은 비만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아침식사용 슈퍼푸드를 개발하려는 야심에서 시작된 켈로그는 어쩌다 미국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악당이 됐을까. ‘건강식을 팔고 싶다’는 존 켈로그의 책무감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윌 켈로그의 목표가 상충했다. 책은 존과 윌로 대표되는 기업가의 딜레마를 언급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늘 윌이 승리하는 것 같다. 저자들은 오늘날 기업의 문제가 윤리나 사회적 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내면서까지 단기적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경영행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를 ‘수탁제일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문제야”라고 말하는 대신 기업들이 수탁제일주의에 취약해져 온 과정을 먼저 살펴본다.
19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사업장은 소규모 가내 공장이었고 고객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이런 시대 사업자들은 이윤추구 욕구와 사회에 대한 책무의식을 지역사회에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목표 아래서 직감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전국 유통망을 구축한 독점 기업의 시대가 되면서 이윤추구를 위해 책무감을 버리는 일이 쉬워졌다. 썩은 고기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20세기 들어 노동조합이 기업 지분을 사들여 통제하기도 했고,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기도 했다.
공공통제 모델이 무너진 계기는 1970년대 연금개혁이다. 과거에는 정해진 급여대로 회사가 연금을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리스크를 피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부터 회사가 적립금을 지급하면 노동자가 기금을 관리하고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연금제도가 바뀌었다. 회사가 지역사회와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보다 기금을 관리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세계를 무대로 고수익을 올릴 때 노동자들의 노후가 든든해진다. 회사는 기관투자가의 포로가 됐고 수탁제일주의가 판치게 됐다.
저자들은 자본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착한 기업 만들기’에 냉소적이다. 역설적으로 기업과 자본주의에 대한 낙관적 신념 때문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모든 기업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 판다’는 착한 의도를 갖고 있다. 수탁제일주의는 그대로 두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투자(ESG) 등을 강조하면 식품기업은 설탕 범벅인 식품을 팔아 번 돈을 어린이병원에 기부한다. 저자들은 ‘별도로 착한 일을 하라’고 하는 대신 ‘기업가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가 환경오염이나 탄소배출 등 기업의 외부효과에 과세하면 도움이 된다. 기업의 설립 목적과 달성을 반영하는 기업공시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저자들이 ‘착한 경영’을 아예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기업가가 해당 이슈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악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기업가에게도 정부나 시민사회만 바라보지 말고 길을 찾으라 한다. 자본주의자의 자본주의 구원 방식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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