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머그] "적당히 형량 살고 나오면 잘 살 수 있을까?"..횡령범들 추적기
한 번에 큰돈 챙겨 신세 고쳐보려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감옥 다녀와도 숨겨놓은 돈으로 잘 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습니다.
진짜로 신세 고칠 수 있을까요?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시대의 횡령범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과거 동아건설 횡령사건 뉴스 (2009년 10월), A 씨/피의자 :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 보니까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게 됐습니다. 회사 돈을 잠시 유용한 뒤 나중에 살 수 있는 돈만 벌면 안 하려고 하다가….]
피해액 1천887억 원, 돌려막기한 금액을 제외하면 착복한 금액 964억 원.
도산 위기의 회사가 빚을 갚으려고 은행에 맡겨둔 돈을 내부 직원이 횡령한, 당시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A 씨는 당시 그 돈으로 호화 별장을 샀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곳에 다시 가봤습니다.
당시 이곳 어딘가에 현금을 숨겨 놨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업체 직원 : 여기는 부사장님이 경매로 해서 사가지고 그때 16억인가에 사서 여기 비어 있었어요. 그때 바위가 큰 게 있었어요. 근데 그거를 못 들어냈어요. 너무 무거워서 그 밑에 숨기지 않았나 뭐 그런 우리끼리 추측을 하고 그랬었거든요.]
지금은 A씨의 소유는 아닙니다.
마당이 있던 곳은 업체의 창고가, 저택은 이 업체의 사무실이 됐습니다.
집 내부로 들어가봤습니다.
당시 인테리어가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특이한 방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대 문을 열면 숨겨진 비밀의 방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업체 직원 : 저희는 뭐가 있는 줄 몰라서, 찬장인 줄 알아서 찬장에 뭐 담으려고 열었는데 또 문이 있더라고요 문이 또 있어서… 횡령한 돈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A 씨는 카지노와 경마, 주식 투자 등으로 돈을 거의다 탕진했다고 진술했지만, 사실은 몰래 은닉했을 것이란 의혹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특별수사팀은 비닐로 포장한 뒤 포도밭 땅 속에 묻어 놓은 현금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정만 변호사/당시 특별수사팀장 : (횡령한 돈으로) 부동산을 사놓은 것도 찾았고 내연녀 집에 숨겨 놓은 현금 이런 것들, 자기 지인 포도밭에 비닐봉지에다가 돈을 현금을 한 3억 몇천만 원 넣어가지고 묻어놓은 거 이런 것도 파내기도 하고 해서 전체적인 금액을 80억 정도 찾아서 은행에도 통보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보전을 해라'라는 취지로….]
재판부는 판결문에 '상당액을 은닉한 것으로 보인다'고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계속 돈을 탕진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횡령한 돈 964억 원 가운데, 검찰은 80억 원만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호화 별장과 A 씨 소유의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가 동아건설의 피해금 중 일부로 환수됐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입니다.
돈을 받아내야 하는 동아건설은 그 뒤 2014년 법정 관리에 들어간 뒤 다른 기업에 매각됐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도 현재는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환수 액수를 물어봤습니다.
[동아건설산업 관계자 : 금액상으로는 확인이 솔직히 너무 어려워요. 직접적인 회수는 진행했으나 횡령금 자체에 대해서 회수된 금액은 많지 않다.]
A씨는 현재도 교도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법원이 선고할 수 있는 처단형의 가장 상한형인 22년 6월 형이 확정됐고, 벌금 100억 원도 함께 선고가 됐는데, 이 돈을 갚지 못했다면 하루에 1천만 원꼴로 계산해 노역을 해야 합니다.
이른바 '황제 노역'입니다.
계산해보면 전체 22년 6월+2년 9월을 복역해야 하는 셈입니다.
A 씨가 만기 출소를 한다면 만 73살에 밖에 나오게 됩니다.
그럼 A 씨의 가족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A 부장의 아내는 당시 횡령한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습니다.
취재진이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바탕으로 과거 거주했던 곳까지 모두 찾아가 봤지만 그 이후 소식을 아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정만 변호사/당시 특별수사팀장 : 좀 표현이 저속할지 모르지만 찝찝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이제 후속 조치로서 돈을 찾고 이런 부분들은 차분하게 좀 지속적으로 찾는 작업도 하고 했어야 되지 않나 생각은 듭니다. 지금 같으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더 아마 환수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이 사건 발생 다음 해인 지난 2010년쯤 벌어집니다.
A 씨가 옥중서신을 구치소 동료에게 전달하려고 했다가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돈을 숨겨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문구가 있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취재진은 A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순천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인터넷 편지를 보내고, 접견 신청도 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접견과 반론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순천교도소 관계자 : 아 김혜민 씨 내일 접견 예약하셨죠. 근데 이분 ○○○ 씨께서 접견 안 하신다고 거부하셔가지고… (혹시 안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수용자가 안 하겠다고… (그 얘기만 하셨어요?) 예….]
취재진은 국가의 세금 80억 원을 횡령한 부부도 추적해보기로 했습니다.
[과거 여수시청 횡령사건 뉴스 (2012년 10월) : 횡령 수법은 너무나 대담했습니다. 검찰은 남편이 빼돌린 돈으로 외제 차를 사고 사채놀이에 쓴 아내도 횡령 공범으로 구속했습니다.]
여수시청 공무원 B 씨, 지난 2009년 담당 업무를 맡은 지 며칠 만에 횡령을 하기 시작해 무려 3년 동안 80억 원이 넘는 돈을 빼돌렸습니다.
부인도 가담했는데 대부분 사채 빚을 갚는 데 쓰고 남는 게 없다고 주장해서 범행이 드러난 뒤에도 피해는 거의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한창진 시민감동연구소장·전 여수시민협회 공동대표 : 환수도 환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여수시의 시장을 비롯한 담당 공무원들은 뭘 했느냐 어떻게 해서 80억 원을 횡령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저희는 놀랐던 거죠.]
이 부부는 법원에서 징역 9년과 징역 5년이 확정됐습니다.
대기업 횡령범과 다른 점은 '추징금'이 있다는 겁니다.
2심 재판부는 추징금 80억 원에다가 여수시에 60억 원을 지급하라는 배상명령까지 내렸습니다.
[조종현/변호사·회계사 : 벌금으로는 사실 그 범죄 수익을 전부 다 환수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추징금이란 제도를 통해가지고 그 범죄 이익을 그 범죄자로부터 환수하는 제도가 됩니다.]
만기 복역했더라도 이미 지난해 출소한 상황.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하지만 B 씨 부부는 출소 후 과거 살던 곳에서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파트 미화원 : (어디로 갔는지 들어보신 게 있는지) 그런 거는 못 들어봤는데 하여튼 그 여자가 여기서 뭐 개도 2마리 안고 우아하게 살았나 보더라고, 아주 부티 나게 살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다 우리 돈으로 저렇게 누리고 살았구나" 그랬죠.]
그렇다면 돈을 환수해야 하는 여수시청은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을까? 시청을 찾았습니다.
여수시청은 현재 B 씨 부부의 재산이 나오면 계속해서 환수 작업을 하고 있지만 보도가 될 때마다 이들이 잠적해 환수에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B 씨 부부는 횡령액 80억 원 가운데, 지금까지 15억여 원을 갚았습니다.
또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 중 2억 9천400만 원도 냈습니다.
나머지 돈에 대해 B 씨 부부는 수사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채를 갚는 데 써서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현재 매달 추징금을 2만 원씩 갚고는 있지만, 이들 부부 앞으로 된 재산이 없어 완전한 환수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취재진이 여수에서 돌아온 뒤, 한 제보자로부터 이들 부부가 현재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살기 팍팍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도 10년 전 대규모 횡령사건을 겪었습니다.
[삼성전자 횡령사건 뉴스 (2012년 12월) : 도박 사이트에서 도박을 접한 박 씨는 마카오 등 해외에 원정 도박을 갈 정도로 빠져들었고, 도박빚이 불어나자 회삿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난달 내부 감사를 벌이면서 박 씨의 횡령 사실이 발각됐고...
박 씨는 2년 동안 은밀하게 165억 원을 빼돌렸는데, 그 역시 남은 돈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부분 도박으로 탕진한 뒤 태국 환치기 계좌로 송금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박 씨가 해외로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횡령과 함께 재산국외도피혐의까지 더해 기소했습니다.
횡령한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부장검사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김재훈 변호사/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 제가 처음에는 "징역 45년을 (구형)하자, 징역 45년 구형해서 경종을 울리자" 본인이 그렇게 해서 그만큼 해서 몸으로 때우겠다 그러면 평생 감옥살이를 할 각오를 해야죠. 내부 검토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저희가 기소할 때는 징역 30년을 구형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숨겨놓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 판결문에도 언뜻 나오고 있는데 범죄 수익을 은닉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는 표현이 엄청 나오는데 상당 부분 숨겨놨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저희는 인정합니다 저 처벌받겠습니다. 그러나 돈은 못 내놓습니다" 그거는 제가 볼 때는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A 씨는 실제로 중형을 선고 받고 횡령한 돈도 갚았을까요? 재판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가 참여했고, 이후 실제 선고 형량은 훨씬 낮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2년 줄어든 7년 형을 선고 받아 형이 확정됐습니다.
외국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C 씨가 일부 변제를 한 것도 형량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써있지만, 횡령한 165억 원에 비하면 극히 일부입니다.
삼성전자는 나머지 돈을 받아내기 위해 2015년 박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C 씨가 160억 원을 삼성전자에 지급하라는 선고도 나왔고요.
삼성전자는 "부모가 돈을 갚겠다고 했지만 그것조차 안 됐다, 거의 못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추적 과정에서 형을 마치고 출소한 C 씨의 행적이 일부 확인됐습니다.
[그 사람 ○○○을 찾은 것 같아요. 그래요? 얼굴이 같은 사람인데? ○○○도 되게 자주 나가는 것 같아요. 이것만 보면 굉장히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네요? 그렇죠.]
서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명의는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얼마나, 어떻게 변제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김혜민 기자 : 얼마나 피해가 변제가 됐는지도 궁금하고 어떻게 사는지도… 그냥 끊었네.]
그는 대신 "자신의 죄에 대한 처벌은 모두 받았고, 외부에 자신의 과거가 공개되길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크게 한번 벌어보겠다는 한탕주의의 말로는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난했고, 또 주변의 눈을 피해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횡령범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한 것은 아닌지, 횡령범들이 빼돌린 돈에 대한 추적을 쉽게 중간에 멈추는 건 아닌지 시스템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종현/변호사·회계사 : 어떤 기업의 신뢰 기업의 이미지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에서 횡령이 생겼고 그럼 그 회사의 신뢰도는 어떻게 할 거냐 그런 상황이라면 가급적이면 그런 일들이 얼른 이렇게 지워지기를 바랄 수도 있고요.]
실제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횡령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는데 환수율은 4.8%,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최근 '한탕주의' 속에 잇따르고 있는 횡령사건들을 감안하면, "탕진했다"는 진술 만으로 환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 '내가 카지노 왔다' 이런 거를 CCTV 앞에서 며칠 동안 보입니다. 이러한 돈세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추적을 하고 환수를 해야 되는데 그냥 보이는 것 어떤 CCTV 이런 것을 보고 추적을 멈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금의 흐름이라든지 주거지라든지 관계자 목격자 관련자를 중심으로 추적을 해서….]
[김재훈 변호사/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 공통점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도박장에서 날려버렸다 더 이상 추적 불가. 그걸 도박죄로 해가지고 그 큰 범죄에 도박죄가 더 추가된다 해가지고 크게 형량이 달라지지도 않는다라는 것 때문에 추적은 피하면서 양형상의 불이익은 크게 없는 그 아이템을 개발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정작 무서운 것은 뭐냐면 그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데 그 이익은 자기는 숨겨놓고 있어요. 그러면 혼내야죠. 그게 상식 아닙니까.]
(구성 : 김혜민 / 영상취재 : 서진호 / 편집 : 이홍명 / CG : 서현중 성재은 안지현 전해리 조현서)
김혜민 기자kh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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