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틀만에 행사불참..'의문부호' 커진 엘리자베스 여왕의 건강

런던=김윤종 2022. 6. 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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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검궁에 투영된 영국 여왕 영상.
“이틀째 행사에는 여왕님이 불참하십니다.”

2일(현지시간) 오후 8시 영국 런던 버킹검궁 앞. 이날 저녁에는 버킹엄궁 앞에서 토종 나무 350개로 구성된 21m의 대형 조형물 ‘트리 오브 트리스(Tree of Trees)’가 점등돼 수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날부터 5일까지 나흘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96)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가 열린다. 점등식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이날 저녁 행사에 몰린 영국 시민들은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동 불편 등 건강 상의 이유로 행사 이틀째 일정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영국 왕실의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 ‘의문부호’ 커진 96세 여왕

영국 왕실은 이날 저녁 “여왕이 플래티넘 주빌리의 이틀째 행사인 예배에 불참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여왕은 3일 오전 11시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개최되는 감사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왕이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예배 참석 시 걸어야 하는 거리, 활동을 해야 할 시간이 길어져 참석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 영국 왕실의 설명이다.

왕실은 플래티넘 주빌리 첫날 첫 행사인 ‘군기분열식’(Trooping the Colour)에는 여왕이 참석했지만 몸이 일정 부분 불편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여왕은 2일 첫 행사에서 버킹엄궁 발코니에 사촌 동생 켄트 공작(87)과 함께 등장했다. 이어 찰스 왕세자(74)와 커밀라 왕세자빈, 윌리엄 왕세손(40)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40), 왕세손 부부의 자녀 등 왕실 가족이 모두 발코니에 등장했다. 여왕은 이 때 손을 흔든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째 70주년 즉위 기념 행사에는 불참할 정도로 여왕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셈이다. 다만 여왕은 이틀째 행사 중 하나인 윈저성 야간 조명 행사에는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왕 건강에 의문부호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일간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은 우려했다. 실제 여왕은 지난해 4월 74년 간 해로(偕老)해온 남편 필립공이 사망한 후 건강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여왕은 같은 해 10월 의료진 권고로 하루 입원한 후 건강 영국 왕립군 출범 100주년 기념 미사에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여왕은 올해 2월 코로나19에도 감염됐다. 특히 거동불편일 이유로 올해 5월 의회 ‘여왕 연설’ 같은 주요 공식일정도 불참하면서 ‘건강 우려’가 더욱 커졌다.

그나마 여왕은 지난달 17일 런던 패딩턴역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지하철 ‘엘리자베스선’ 개통식에 참석하면서 건강에 관한 염려를 다소 누그러트렸다. 런던 시민 테일러 씨는 “행사 첫날에 여왕이 모습을 드러내 안도했다”며 “그런데 이틀째 주요 행사인 예배에는 불참한다고 하니, 걱정된다”고 말했다.

● 英 국민 10명 중 6명 “여왕, 죽을 때 까지 왕좌 지켜야”

영국 런던 시내 여왕 관련 작품·상품들
이날 기자는 버킹검궁을 비롯해 런던 시내 곳곳에는 여왕의 얼굴 초상화, 여왕을 그린 초상화, 여왕 관련 영상 등을 볼 수 있었다. 여왕의 존재는 영국 국민들에게 절대적이었다.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 참석 여부도 영국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는 단순히 한 국가 군주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을 넘어선 정도였다. 70주년 행사조차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면 사실상 여왕의 임기가 끝났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BBC 등은 전했다.

영국 런던 시내 여왕 관련 작품·상품들
영국 런던 시내 여왕 관련 작품·상품들
96세의 고령인 여왕에게도 건강 문제와 영국 국민들의 기대가 점차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여왕에 대한 영국민의 의존도가 너무 높은 탓이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YouGov) 4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민의 58%는 “여왕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군주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는 답했다. 10명 중 6명은 여왕의 종신집권을 선호한다는 것. 반면 “여왕이 이제는 은퇴하고 왕좌를 물려줘야 한다”는 답변은 26%에 불과했다.

올해 뿐만이 아니다. 여왕이 살아 있을 동안은 계속 왕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2019~2021년 설문조사에서도 56~59%에 달했다. 반면 “여왕이 은퇴하고 왕좌를 물려줘야 한다”는 답변은 같은 기간 24~26%에 불과했다. 영국 언론들도 “여왕처럼 96세까지 일하고 싶냐”는 주제로 TV토론을 할 정도다. 한 시민은 “TV토론 나온 패널들도 대부분 ‘96세까지 일하기 싫다’고 답변하는 상황”이라며 “여왕이 쉴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1952년 즉위 후 70년간 냉전, 경제위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왕실 가족을 둘러싼 갖가지 사고, 군주제 폐지 여론 등에도 최장기간 왕위를 지킨 여왕을 대체할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다.

승계 서열 1순위인 찰스 왕세자(74)는 영국민에게 여전히 ‘비호감’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다이애나와의 이혼과 내연녀 커밀라 파커 볼스와의 재혼 등으로 영국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달 19일 성인 1039명을 설문한 결과 찰스 왕세자가 ‘왕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란 응답은 40%에 불과했다. ‘왕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할 것’이란 부정적 의견도 20%나 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경우 각종 설문조사에서 왕 역할과 업무에 대해 70~80%대의 긍정적 의견을 얻어왔다.

일간 더 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여왕 즉위 70주년 행사가 끝난 후에는 후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도 코로나19로 인해 3일 감사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영국 왕실은 앤드루 왕자가 정기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인해 올해 1월 ‘전하’(His royal highness) 호칭까지 박탈했다. 그는 행사 첫날 여왕과 찰스 왕세자 등이 참석한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에도 나오지 못했다.

런던=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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