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장 향한 당국자 메시지는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세종=박소정 기자 2022. 6. 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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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국내 국고채 시장은 바쁘게도 움직였다. 대출 금리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국채 3년물 금리가 3%대를 넘느냐, 내려가느냐를 가늠자로 두고 충격과 안도가 반복된 모양새였다.

지난 3월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올리는 ‘빅 스텝’을 수 차례 단행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채권 금리는 폭등했다. 4월까지는 새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적자 국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채 금리를 밀어 올렸다. 전쟁 자금 빼앗아 가듯 국채 발행을 늘리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었다. 3년물 금리는 8년 만에 3%대를 돌파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받은 사람들)은 대출 금리 올라가는 속도에 아연실색했다.

채권시장의 공포는 윤석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발표된 지난 5월 초 누그러졌다. 적자국채를 찍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국채를 상환하겠다는 정부 발표 때문이었다. ‘적자 국채 없는 추경’이라는 방침은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정부의 선의를 맞이하면서 국채 3년물 금리는 다시 3%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불과 4거래일 이후 “(한은도) 빅스텝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한마디가 이런 하락분을 되돌렸다. 3년물은 다시 3%를 돌파했다.

5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열린 지난달 26일 국채 금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오전 11시 10분부터 1시간가량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 총재의 한마디, 한마디에 국채 금리는 급등락을 거듭했다. “5%대 물가 전망” 발언에 튀어 오르고, “한미 금리 역전차 감내할 수 있다”에 다시 내리고, “기준금리 7·8월 연속 인상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치솟는 식이었다. 이날 10년물은 장중 10bp(1bp=0.01%포인트)까지 오르는 등 큰 변동 폭을 보였다.

다만 시장은 곧바로 이런 재료를 모두 소화한 뒤 서서히 오름폭을 줄여 소폭 상승 마감하는 데 그쳤다. 3년물 금리도 3%대 아래에서 장을 마쳤다. 장 마감 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채 발행량 축소·바이백(조기 상환) 계획이 더해지면서 다음날 채권시장은 안정을 되찾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시장에선 여느 때보다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조그만 타이틀 하나에도 곧바로 금리가 뛰었다가, 막상 별일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변동 폭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당국에서도 불필요한 변동성이 커지면서 대응하기가 까다로워졌다고 토로한다.

이럴 때일수록 통화당국이나 정책당국이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분명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창용 총재 발언에 대한 채권시장의 평가는 음미해볼 만하다.

이 총재의 5월 초 ‘빅스텝’ 발언은 뜬금없는 발언이자 기재부와 발맞추지 못한 소통으로 시장에 불필요한 ‘노이즈(noise)’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5월 금통위 때의 발언은 ‘한은의 정책 스탠스를 이해하게 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총재가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빼곡히 채워 정확히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은이 블로그를 통해 갑자기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달 31일 신설된 공식 블로그에서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기준금리 인상을 ‘숙제’에 비유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숙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마감일이 임박해서 밤을 새우게 되고, 그러면 숙제의 질도 떨어지고 몸도 많이 상하게 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맥락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메시지에 놀란 채권시장은 국채 3년 금리를 다시 3% 위로 끌어올렸다. 예고 없이 돌출된 글 하나가 금통위 때보다 변동성을 키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비단 한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추경을 비롯해 국채와 물가 대응 등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메시지를 내는 기재부 차원에서도 어느 때보다 근거와 논리를 명확히 앞세운, 책임 있는 발언을 내뱉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빅스텝 발언 여파 후 “저도 커뮤니케이션 (수위)를 조절할 테니, 서로 소통의 방식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밝히며, 정책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려 노력했던 이창용 총재의 달라진 모습은 좋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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