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권하는 美·英, 과연 러시아만 惡인가[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2. 6. 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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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최첨단 정밀타격용 무기 공급
동남부 600km'초승달' 지역 러 장악
오데사까지 위험, 내륙국 전락 위기
SWIFT 퇴출 등 경제제재 소용없어
러시아 절대악, 우크라 절대선 아냐
키신저 "러 장악한 지역 할양" 주장

오늘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00일째다. 종식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 중앙 지역 외에 대부분이 파괴됐다. 인명 손실은 우크라와 러시아가 상이한 주장을 하고 있어 정확한 인원을 알 수 없으나 사망자만 양쪽 합쳐 군인 수만 명, 민간인 수천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쟁은 침략자나 피침략자나 실익 없는 소모전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매일 평균 100명이 목숨을 잃고 500명의 부상자가 나온다'고 했다고 최근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러시아도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을 것이다. 승자 없는 전쟁이다. 빨리 끝내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이는 일이고 정의로운 일이다.

그런데 전쟁은 수렁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초기 수차례 협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마저 없다. 개전자이자 가장 무거운 전쟁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아직 종전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 더 우려를 고조시키는 것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우크라에 무기와 전비를 지원하면서 우크라로 하여금 전쟁을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크라로 하여금 종전 협상에 나서는 것을 방해한다. 현실을 냉철히 봐야 한다.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도 있다. 우크라가 인명과 영토를 최대한 보존해 후일의 번영을 기약하려면 협상에 임해야 한다.

◆현재 전황

외신과 독립적 미디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전황은 우크라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우크라 스스로도 동남부 세베로도네츠크의 80% 이상을 러시아가 점령했다고 밝혔다. 우크라 제2의 도시 하르키우 동쪽에서부터 남부 헤르손까지 약 600km 초승달 모양의 우크라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 손에 넘어갔다. 앞으로 최대 관심은 헤르손 서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우크라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를 러시아가 과연 점령할 것인가이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는 흑해로 통하는 길이 완전 봉쇄되고 내륙국가로 축소된다.

이는 우크라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다. 러시아가 오데사를 수차례 포격은 했지만, 아직 본격 타깃으로 삼지는 않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를 절벽으로 몰아가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측불허다. 러시아의 오데사 포격을 두고 서방은 곡물수출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오데사에서 곡물수출을 완전히 막고 있진 않다고 반박한다. 흑해 내해인 아조프해의 우크라 두 번째 큰 항구도시 마리우풀은 이미 러시아가 점령해 우크라의 곡물수출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러시아의 영토적 목표

현재까지 전개된 러시아의 공격루트를 보면 러시아의 영토적 목표가 드러난다. 초기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서부로 진입했다 한 달 만에 퇴각한 것은 기만전술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우크라 정규군을 거기에 묶어 두면서 동남부 공략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전술은 성공적이었다. 동남부 초승달 지역은 현재 급속도로 러시아화가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은 원래 러시아계 주민이 40% 이상을 차지했던 지역이다. 우크라 주민은 전쟁 발발 후 떠났거나 일부는 러시아 편입에 동조했다.

우크라와 서방은 인정하기 싫은 대목이지만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성공적으로 영토화한 경험이 있다. 사회 인프라를 재건하고 보건 서비스 복원을 서둘렀다. 주민들에게 러시아와 우크라 중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러시아 국민이 되겠다는 주민들에겐 여권을 발급했다. 물론 크림반도가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에 넘겨주기 전에는 러시아의 땅이었고 주민 60%가랑이 러시아계였기 때문에 영토화가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 모델을 러시아는 현재 이 초승달 지역, 즉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와 헤르손 등에서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영 중심으로 계속되는 무기 공급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에 정밀 타격이 가능한 최첨단 다연장 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격용 헬기(Mi-17)와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탄약·포탄 등 7억 달러(약 8700억원) 규모의 무기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했다. 사거리가 45마일(72km)에 이르는 하이마스는 지금껏 미국이 우크라에 제공한 무기 중 가장 첨단이고 강력하다. 미국이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포인 재블린에 이어 우크라로서는 효용 가치가 큰 무기다. 우크라는 현재 무기와 전비 부족에 처해 있다. 서방이 제공한 상당한 양의 무기들이 러시아의 정밀 미사일 타격에 파괴됐다. 하이마스가 실제 인도된다면 우크라에 새로운 힘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영국도 최근 다연장로켓포(MLRS)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하이마스와 동종의 정밀 타격 무기로서 원격지에 있는 러시아군의 장사정포를 타격할 수 있다. 이밖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신청한 스웨덴도 대함 미사일을 비롯해 소총과 대전차 무기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도 대공미사일과 레이더추적기, 방공무기를 제공하기로 했다. 서방 나토 가입국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크라에 무기나 군수물자, 돈을 대고 있다.

미·영을 중심으로 우크라에 지속적으로 무기가 공급되자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하는 중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국은 기름을 붓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다연장 로켓시스템은 확전 위험을 키운다"며 "제3국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종전 촉구 여론들

미·영과 달리 독일과 프랑스 등은 서서히 전쟁의 출구를 찾으려 나서고 있다. 지난달 말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휴전을 촉구했다. 동시에 우크라에게도 협상에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대륙 국가들은 영국과 달리 가스와 원유 등 러시아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다. 그런 면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휴전이나 종전을 요구하는 데는 현재와 같은 소모전이 계속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우크라 민중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크라 국민 4200만명 중 약 1000만명이 해외로 피난했다. 이들은 주로 여성과 노약자지만 유럽에 연고가 있는 우크라의 중상층이다. 현재 우크라 국민 3200만명 정도가 국내에 있다. 이 중 700만 러시아계, 폴란드와 루마니아계 약 500만명을 제외한 2000만명이 전쟁의 참화에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계층이다. 이들은 군대에 갔거나 고향을 지키고 있다. 특히 동남부 전선 지역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전쟁은 언제나 불평등하지만 우크라 전쟁은 계층적, 민족적, 지역적 차원에서 볼 때 유독 불평등하다. 정의롭지 않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깜짝 발언을 했다. 그는 "협상을 통한 종전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영토 할양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대(對) 러시아 강경 진영에게 주는 메시지다. 우크라가 즉각 반발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다. 냉혹한 현실주의 외교전략을 취했던 키신저답다는 비아냥을 샀지만, 사실 종전을 하려면 그밖의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 지정학의 대가인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도 개전 초기 '이 전쟁의 일차적 책임은 러시아에 있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대러시아 압박전략이 작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종전을 촉구하는 배경엔 서방의 제재가 기대만큼 효과가 나지 않는 데서도 기인한다. 러시아는 자립경제가 가능한 국가다. 에너지와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는 경제제재가 먹히지 않는다. 지난 3월 최고 수준의 제재로 여겼던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 퇴출까지 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버텼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얼마든지 대체재가 있다. 루블화는 한때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가 지금은 전쟁 전보다도 가치가 상승했다. 미국으로선 맥 빠지는 일이다.

◆푸틴 자존심 살려주며 복구비 대게 해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이유가 단순히 땅을 빼앗기 위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광대한 영토를 가진 캐나다보다도 거의 2배 가까운 영토를 갖고 있다. 땅은 지천으로 깔렸다. 지금까지 러시아가 내세운 전쟁 명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우크라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러시아와 서방간 완충지대로 남아달라는 것, 둘째 러시아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의 탄압을 멈춰달라는 것이다.

러시아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경을 나누고 있는 우크라가 러시아의 안보적 생존권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나토(NATO) 가입을 추진하고, 우크라를 통해 대(對)러시아 압박을 가한 미국과 영국 등 서방도 책임의 일단이 없다 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우크라의 주권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크라와 러시아간 역사적 민족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걱정과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전쟁이 진행되면서 '우크라 신나치 준동과 러시아계 주민 학살'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마리우풀 점령과 함께 붕괴된 아조우(아조프)연대라는 반민반군 군사조직이 러시아계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삼은 흔적이 밝혀지고 있다.

즉 러시아는 절대 악이고 우크라는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전쟁 발발 초기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우크라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중립국(나토 불가입)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EU와 관계를 강화하는 실리적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애초에 그런 노선을 추구했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우크라 정규군은 사실상 와해 직전이다. 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의 피해는 더 커지고 민간인 손실도 가늠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인도적 필요에서도 이제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미국과 영국이 무기를 공급하고 전비를 지원하는 것은 우크라를 돕는 듯 하지만, 사실은 더 수렁으로 몰아넣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크림반도를 포함해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로 넘겨주고 러시아는 전쟁참화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전후복구비를 감당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푸틴이 내세우는 전쟁 명분 두 가지는 이미 상당히 성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푸틴의 자존심이 선 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우중문에게 준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詩)이라는 시(詩)가 있다. 서방은 푸틴에게 '이미 얻은 게 있으니 그만 물러나라'고 달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캐나다를 매개로 우크라에 공격용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검토한다는데, 재고해야 한다. 전쟁을 권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반(反)생명적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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