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이 칼럼을 쓰면서 영화를 통해 다양한 양육자 캐릭터를 접했다. 가난이나 전쟁과 싸워야 하는 부모, 아이의 소수자성을 품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닌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어른 등 영화로 만난 다양한 양육자의 모습 속에는 초보 엄마로서 배워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마이어로위츠 이야기'(2017)에서 처음으로 타산지석이 될 만한 부모 캐릭터를 만났다. 어후, 나는 늙어서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내가 볼 때, 삼남매의 아버지 헤럴드는 이 가족 내 '최종 빌런'이다. 조각가이자 퇴임한 미술 대학 교수인 그는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남 대니와 딸 진, 세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 매슈를 뒀다. 현재는 네 번째 부인 모린과 함께 살고 있다.
대니의 딸 일라이자가 이번에 헤럴드가 재직하던 바드 대학 영화과에 진학할 만큼, 이들 삼남매는 이미 중년에 접어든 장성한 자녀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 뒤틀려 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헤럴드는 자식들에게 그늘이 아니라 그림자다. 햇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이 아니라, 자꾸만 쫓아오는데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
우선, 헤럴드는 자식들을 충분히,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장남 대니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았다고 실망한다. 헤럴드는 너무나 무심하게 "넌 평생 일한 적 없잖아."라고 내뱉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음악을 하던 시간을 대니는 이렇게 회상한다. "밀크셰이크 먹으려고 맨발로 유리 위를 걷는 것 같았어. 밀크셰이크는 좋아하지만 발에서 피가 났지."
헤럴드는 딸 진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차남 매슈는 성공한 사업가인데 남들에게는 매슈가 성공한 아들이라고 자랑하는 것 같지만, 정작 매슈는 분통을 터뜨린다. 돈을 벌어도 예술가 아빠가 돈 만지는 자신의 직업을 무시해서 소용이 없다고.
다음으로, 헤럴드는 자녀들을 차별했다. 대니와 진은 어머니가 같고, 매슈만 어머니가 다른데 헤럴드는 대니와 진을 홀대하고, 매슈를 편애했다. 헤럴드도 매슈에게만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정도다. 아버지의 기울어진 사랑은 약자인 아이들의 관계를 일그러뜨렸다. 사랑을 충분히 못 받은 아이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대니와 진은 자신들이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고 울먹인다. 사랑을 몰아서 받은 아이의 어깨에는 부담감과 죄책감이 얹힌다. 매슈는 아빠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누나와 형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면서 "내 인생은 개판이 됐다"고 토로한다.
헤럴드와 대조적으로 매슈의 친모 줄리아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 자신도 당시에 너무 어려서 대니와 진에게 잘해주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품어줄걸 그랬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쯤 되면 헤럴드도 회개(!)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덤덤히 전처의 고백을 듣더니 줄리아와 헤어진 후, 매슈에게 전처 험담을 한다. 네 엄마는 자기보다 멍청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나는 너무 대단해서 네 엄마가 주도권을 쥘 수 없었다 어쩌고 저쩌고. 아니, 어르신 정말 왜 이러시나요.
내 깜냥으로 영화를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 어르신이 이러시는 이유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온 세상이 자기를 기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가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성공한 조각가 동료 엘제이는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데 왜 자신은 그만큼 유명해지지 못했는가이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늘 투덜대고 화를 낸다. 헤럴드는 자아가 너무 비대해서 그 안에서 허우적대느라 타인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여유 공간이 없다. 심지어 그 타인이 자기 자식일지라도.
대니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큰 잘못을 딱 하나만 해서 그것만 원망하면서 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자신을 화나게 하는 "자잘한 일"만 날마다 일어난다고 푸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했다. 의도적으로 아이를 괴롭히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의 부모는 이렇게 '자잘한' 악행을 쌓아가면서 자식을 억누르는구나. 실제로 헤럴드는 자식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식들의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이야기만 해서 상대를 은근히, 잔잔하게, 꾸준히 짜증나게 만들 뿐이다.
세상엔 훌륭하고 대단한 부모들이 많아서 부모 노릇의 상한선은 끝이 없어 보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하한선을 그을 수 있게 됐다. 솔직히 시원한 나무 그늘이 되어줄 자신은 없고, 최소한 아이에게 어두컴컴한 그림자로 들러붙지는 말자. '자잘한 일'로 아이에게 상처 주지 말자.
이렇게만 쓰고 보니 영화 내용이 갑갑해 보이는데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대니의 반격(?)에 대해 쓰지 않았을 뿐, 부모 자식 간의 얽히고설키는 복잡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다룬 영화라 볼 만하다. 더스틴 호프먼, 애덤 샌들러, 벤 스틸러, 엠마 톰슨 등 대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근사하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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