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정치평설] 민주당, '닮은꼴' 영국 노동당에 배울 점

국제신문 2022. 6.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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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제8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이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지난 2019년 영국 총선이었다. 노동당은 이 선거에서 84년 만에 최소의석이라는 처참한(disastrous) 패배를 당했다. 당초 박빙으로 점쳐졌던 선거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다. 당시 선거는 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의 ‘벼랑 끝 전술’에 따라 마련된 조기 총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를 놓고 심각한 내홍에 시달리던 존슨 총리가 돌파구로 총선카드를 내밀자 당내 반발은 더 격화됐다. 노동당으로선 충분히 해볼 만한 선거였다.

물론 이번 선거는 민주당으로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 이내 선거에선 정국 안정론이 견제론을 앞서기 마련. 그럼에도 민주당이 해볼 만한 여건은 충분했다. 대선 승부가 불과 0.73% 차이로 갈렸다. 정권은 넘어갔지만, 여전히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으로 입법권은 틀어쥐고 있었다. 여기다 대여 공격용 소재가 차고 넘쳤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서 드러난 새 정권의 불통, 서육남(서울대· 60대·남성)으로 대변되는 편중 인사 등이 대표적 사례. 그래서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최소 7개, 잘하면 9개까지 승리를 내심 예측하기도 했다. 단순히 전망과 다른 선거 결과 때문이라면 비슷한 사례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노동당을 떠올린 이유가 뭘까. 두 선거 모두 상대가 잘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무너진 측면이 더 크다는 점 때문이다.

2010년 정권을 빼앗긴 노동당은 2015년 총선에서도 연이어 패배했다. 당시 에드워드 밀리반드 당수의 좌경화 노선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 하지만 총선 후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외골수 급진좌파 리더 제러미 코빈이었다. ‘사회주의 노선으로 국가개조’를 들고 나선 그에게 강성 지지층이 결집한 것. 유권자들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여 반성하려는 움직임은 졸지에 멈춰버렸다. 이념적 편향성을 강화하며 원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외려 커져 버렸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행보 역시 이와 꼭 닮은꼴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가 패배 책임이 컸던 윤호중 원내대표였다. 선거 직후 스스로 사퇴했던 송영길 당 대표는 느닷없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패배 당사자였던 이재명 후보는 당 안팎의 우려에도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국회의원 보선에 출전했다. 스스로 다짐했던 반성과 혁신은 시나브로 사라져버렸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을 아랑곳 않은 채 원칙에 더 집착한 태도였다. 정권이양 전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꽂혀 절차적 정당성을 걷어차 버렸다. 그 와중에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은 빛이 바랬다. 당연히 더 큰 비판을 자초했다. “집권 기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검찰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방탄용 입법 아니냐.” 이에 당내에서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그러나 “문재인·이재명을 지키자”는 지지층의 고함에 묻혀 버렸다. 오히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도 개혁성을 더 벼려야 한다는 강경론이 득세했다.

2019년 조기 총선에 나선 노동당 역시 코빈 당수의 급진 개혁론에 끌려갔다. 무상의료 확대, 철도 재국유화, 대학 등록금 폐지, 초고속인터넷망 무료, 주4일근무제 등이 주요공약으로 채택됐다. 5년 전 실패의 답습을 우려한 중도파가 반발했으나 바로 진압됐다. 코빈의 원칙과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진 스타일에 강한 ‘팬덤’이 형성된 것. 이에 따른 선거 결과는 이미 말한 대로 참패였다. 유권자들의 심판은 놀라울 정도였다. 노동당의 정치적 텃밭, ‘레드 월(Red Wall)’로 불렸던 폐광촌 지역이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선거 뒤 시사주간지, 포린폴리시(FP)는 “코빈과 그 지지자들이 1970년대에 갇혀 있었다”고 일갈했다. 급진적 어젠다가 담긴 노동당 정책집을 든 1973년의 코빈 사진을 함께 게재하면서 시대착오적 행태를 지적했다.

적어도 여기까진 두 당이 닮은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후 과정은 어떻게 될까. 코빈은 참패 이후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고 깨끗이 물러났다. 중도외연 확장을 내건 키어 스타이머가 당권을 쟁취했다. 그리고 노동당은 올해 5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크게 이겼다. 민의를 수렴한 중도화 노선이 먹혔던 것이다. 재집권을 위한 중요한 포석을 마련했다.


일단 민주당도 비상대책위가 바로 물러났다. 하지만 ‘0선’의 이재명 대선후보는 이제 금배지를 달고 본격 정치무대인 국회로 나간다. 용퇴를 거부했던 86세대 중진들은 여전히 당내 최대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노동당 같은 변화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꼭 했으면 한다.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 ‘내부총질’이라는 비판에도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끝까지 강조했던 약속이다. 이를 위해선 팬덤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층을 넘어 모두를 안을 수 있다. 대중, 국민의 눈높이와 눈을 맞춰야 한다. ‘내로남불’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털어낼 수 있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1900년 창당된 노동당이 아직 살아있는 것도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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