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8] 정당제 악용하는 선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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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지역 연고가 없는 타지에서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을 ‘카펫배거(carpetbagger)’라고 한다. 원래는 남북전쟁 직후 혼란을 틈타 남부 주(州)로 몰려간 북부 주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었다. 돈벌이를 노려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북부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단어가 현대에 와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연고가 약한 지역에서 출마하는 정치인을 지칭하는 말로 전화(轉化)한 것이다. 뉴욕주 상원의원을 지낸 로버트 케네디, 힐러리 클린턴 등이 대표적 카펫배거로 꼽힌다. 다만 미국에선 당 지도부 간섭 없이 해당 지역구 당원과 주민이 후보를 결정하므로 중앙당이 주도하는 한국식 ‘전략 공천’과는 결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지역 연고 없이 당 차원의 선거 전략으로 공천받은 후보를 ‘낙하산 후보’라고 한다. 이 외에 ‘자객(刺客) 후보’라는 말도 있다. 2005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 민영화 당론에 반기를 든 자당 의원들을 징벌하기 위해 의회 해산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냈다. 이때 반기를 든 의원 선거구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를 세간에서 자객 후보라고 부른 것이다. 당내 파벌 싸움 끝에 반대파의 낙선에 방점을 두고 후보를 수십 명 공천한 것은 일본 정치사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정당제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기능하면서 당의 의중이 선출직 후보 선정에 반영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은 당 지도부가 사실상 공천을 좌우하는 중앙 집중식 정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제 치른 한국 지방·보궐선거에서는 현역 의원이 지역구를 다른 후보에게 내주고 본인은 타지의 지자체장에 출마하면서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무연고 지역에 출마하는 희한한 일도 있었다. 당내 특정인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생니를 뽑아 틀니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정당 이기주의 선거 전략이었던 셈이다. 유권자는 뒷전인 채 정당제를 악용하는 정치 문화가 한국 정치 발전의 걸림돌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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