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아트톡] 유니버설발레단의 도전
우리나라에서 전막(全幕) 발레를 공연할 수 있는 직업 발레단은 세 곳 정도다. 국공립으로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무용단이 있고, 민간으로는 유니버설발레단이 독보적이다. 직업 발레단의 개수가 문화 선진국 지표는 아닐 것이다. 발레 본고장 유럽에도 직업 발레단은 흔치 않다. 거의 모든 장르의 시립예술단을 갖고 있는 서울시도 유독 발레단은 없다.
왜 그럴까.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고도의 기량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장르의 특성을 우선 꼽는다. 발레가 애호가 중심으로 즐기는, 대중성이 부족한 장르여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못 된다. 관건은 훌륭한 무용수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지 여부다. 여성무용수 발레리나와 남성무용수 발레리노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을 아주 어릴 적부터 연마해야 한다.
수직 낙하 법칙인 중력을 거부하고 공중으로 나는 것, 이게 발레의 이상이다. 이를 위해 무용수는 새털처럼 가벼운 몸을 만들어야 한다. 발가락에 온힘을 모아 곧추서는 포인트 자세와 발과 다리를 엉덩이 관절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는 턴 아웃 등 기본기와 갖은 고난도 기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숙련기간이 긴 데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에 웬만한 각오 없이는 매달리기 어려운 예술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직업 발레단은 흔치 않을뿐더러 거의 대부분 국공립 형태로 유지된다. 클래식 발레의 종가로서 황실발레단으로 출발한 러시아 볼쇼이나 마린스키, 영국의 로열발레, 프랑스의 파리오페라발레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발레단 대부분이 그렇다. 체계적이며 꾸준한 교육과 안정적인 운영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거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도 17세기 초 뷔르템베르크공의 궁정에 설립된 왕실발레단이 모태다.
이 대목에서 ‘민간’발레단으로 38년의 역사를 일궈온 유니버설발레단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앞서 말한 국내 굴지의 직업 발레단 세 곳 중 한 곳이다. 순수 민간발레단으로서 오랜 전통을 이어온 뚝심과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유니버설발레단이 오는 11일과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한다.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전막 공연이다. 약칭 ‘잠미녀’는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3대 고전발레로 꼽힌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 단장은 “엄격한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클래식 발레의 교과서’로서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도전, 참으로 와 닿는 말이다. 제법 오래 유니버설발레단을 지켜본 사람으로 판단하건대, 도전은 곧 유니버설발레단과 동의어다. 한국 발레단으로는 처음 미국과 유럽, 아시아 해외 투어를 시도한 것도, 산하 발레아카데미를 통해 문 단장을 비롯해 김인희(전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강수진, 허용순(재독 안무가), 서희(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등 정상급 발레 스타를 키운 곳도 유니버설발레단이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집요한 도전 정신이 없으면 일구지 못한 빛나는 성과로 나는 단연 국공립발레단의 역할을 능가하는 발레 레퍼토리의 개발과 확장을 꼽는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창작발레 ‘심청’과 ‘춘향’은 물론 존 크랑코와 케네스 맥밀런, 이리 킬리언, 나초 두아토, 윌리엄 포사이드, 한스 반 마넨 등의 ‘드라마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클래식 발레단의 틀을 깨는 혁신을 거듭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잠미녀’ 공연을 마치고 무용수들의 뒷이야기를 담은 창작발레 ‘더 발레리나’를 선보인다. 고양문화재단 등 지역의 5개 공연장과 함께 만드는 이 신작으로 여름과 가을 전국을 돈다. ‘예천미지(藝天美地).’ 발레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모토다. 이런 뜻을 기려 후원 모임 ‘문미모’는 발레영재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발레단이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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