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4] 밥짓기의 숭고함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씻고 밥을 먹고 일터로 나가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 행동은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대신 신선하게 자극하는 힘을 잃게 된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웰빙(심리적 안녕)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하는데, 결국 공짜로 되는 건 없다는 얘기다.
밥을 잘 지으려면 처음엔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량이 일정 정도 쌓이면 밥맛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의 건조 정도, 물의 양, 용기 등의 변수에 대한 경험치에 따라 일정한 맛을 낼 수 있게 된다. 밥 짓기를 과제로만 생각하면, 그게 다다. 복잡할 게 없다. 하지만 가사노동으로서의 밥 짓기는 다르다. 끝나지 않는 의무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방명주의 ‘부뚜막꽃’ 연작은 의무감과 습관적인 반복행동에 대한 일탈과 반성의 결과물이다. 그는 아내이자 엄마로서 주어지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라이트박스 위에 가지런히 펼쳐진 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명색이 한국인인데 밥풀을 몰라볼 리 없다. 쌀눈을 꽃술처럼 품은 밥꽃이 탱글하고 노오랗게 화면 가득 피었다.
해마다 쌀 소비가 줄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밥 짓는 소리와 갓 지은 밥알이 입안에서 퍼뜨리는 풍미에 대한 경험에는 뭔가 다른 게 있다. 지우기 힘든 심리적 원형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직접 지은 밥을 부엌이 아닌 스튜디오에 풀어헤침으로써 밥을 짓는 행위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신성한 먹거리로서 생존의 의미, 한솥밥 먹는 가족이라는 식구의 범위, 가사일이 갖는 사회적 의미, 밥과 밥풀처럼 얽힌 전체와 개별의 관계” 등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
지금 반복하고 있는 일에 대해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 세상을 구하는 일은 새로 뽑은 정치인들에게 잠시 맡기고, 오늘은 나와 가족을 위해 밥을 짓는 시간에 집중해보자. 밥 짓기도 밥벌이만큼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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