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돈과 감동
자기와 접촉, 감동하면 맞서고 실천할 힘 생겨
돈에 둔감해야 삶이 온전해진다. 돈은 힘이 세다. 옛날부터 그랬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대체로 호적에 올린 보통 백성은 부유함을 비교하여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 주고, 만 배 많으면 그 하인이 되니,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凡編戶之民,富相什則卑下之,伯則畏憚之,千則役,萬則仆,物之理也)”고 했다. 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千金之子 不死於市)”고 했다.
돈은 힘이 세다. 자살의 70%는 돈으로 인한 우울증이다. ‘2020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만3195명으로 하루 평균 36.1명, 한 시간에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연합뉴스 지난해 9월 28일). 돈은 힘이 세다.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사기 건수가 세계 1등이다. ‘전체 범죄 중 사기 범죄 비율도 2017년 13.9%에서 2020년 21.9%로 올랐다’(파이낸셜뉴스 지난해 11월 29일). 돈은 힘이 세다. 대부분의 논의는 “돈 있나?” “돈 되나?”에서 멈추기 십상이다. 그리곤 모두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며 저마다의 무능을 곱씹는다. 돈은 소비 안락 존경 권력이다. 돈으로 못할 짓은 없다. 부당을 넘고 불법도 뛰어넘는다. 시간을 사기도 한다. 과거를 세탁하고 미래를 예약한다. 돈은 우리 삶에 너무 깊이, 너무 전면화됐다. 돈으로 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은 힘이 세다.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에는 “이 바다를 움직이는 주요한 동력은 열정이나 꿈이 아니라 빚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니라 빚에 쫓겨서 허겁지겁 살아간다”는 문장이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당신은 이 사내가 보기 좋은가. 이 삶이 보기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돈은 힘이 세다. 그래서 돈에 민감하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 ‘다른 것’들에 삶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삶의 즐거움 중 최고는 감동이다. 첫 문장 ‘돈에 둔감해야 삶이 온전해진다’의 의미는, 삶에는 돈뿐만 아니라 감동도 있다는 뜻이다. 감동의 순간은 현재를 벗어나 깊숙이 묻혀있는 ‘자기’와 접촉하는 시간이다.
돈에 둔감해야 시가 보인다. 새벽녘 울컥하고, 방안을 서성인다. 설렘이 몰아친다. 말하고 싶은 욕구는 눌러지지 않는다. 곤히 자는 처를 깨워 짜증과 분노를 부르기도 한다. 낮에는 전화를 건다. 자랑한다. 자랑 없는 삶이 얼마나 지겹고 진부한 것인지…. 상대를 감동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 말을 쏟아낸다. 형편없는 표현력을 한탄하고 글로 옮기지 못하는 무능을 원망한다.
‘새들반점’의 그 쓸쓸한 그리움 그 쓸쓸한 고백. 그 진실의 창조. 백석이 ‘자야’라 칭한 연인이자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수신자 김영한은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희사하면서 “그까짓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다. ‘새들반점’의 시 한 구절에서 나는 세상을 모두 가졌다. 황석영 ‘오래된 정원’의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이 두 문장에 마음이 파였다.
돈에 둔감해야 ‘만난다’. 性(성)은 마음(心)이 생기는(生) 것이다. 마음은 만남에서 생긴다. 사는 것은 만나는 것이다. 만남에서 삶의 원천인 우정이 솟아난다. 우정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감동이다.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고, 키워준다. 의지하고 의지가 되어준다. 신영복 교수는 ‘담론’에서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길 역설했다.
감동 전과 후는 다르다. 감동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로 향한다. 감동한 자신에게 감동한다. 용서하고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하찮아진다. 세계적인 대문호 이병주는 ‘지리산’에서 “악착같이 세속의 일에 골몰해 있다가도 무한대의 우주를 생각하고 이십억 광년(二十億光年)쯤을 관념해 내면 세상만사가 시들해진다. 인생을 살아가는 덴 가끔 세상만사를 시들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친구끼리 비위가 상했더라도 아득한 천체 속에 미립자(微粒子)로서 살면서 그만한 일에 신경을 써서 무엇하나 싶으면 단번에 화해할 기분이 생겨날테니 말이다”고 했다.
감동은 삶의 굴욕과 수치를 즐거움 속 고통으로 여기게 한다. 때로 상황에 용기 있게 맞서게도 한다. 삶에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 자신을 비하하지 않게 하고 원망과 분노를 녹인다. 감동은 삶을 힘 있게, 호방하게 밀고 나가게 한다. 그렇게 감동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돈이라는 벽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은 돈과 함께 감동도 삶에 있어야 한다. 돈에 대한 ‘의식적인 둔감’과 ‘감동에 대한 의식적인 민감’. 돈으로 내달리는 생각을 조금만 물러 세우면 삶이 풍성하게 열린다.
임규찬 도서출판 함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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