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편견 없이 들어보라

이준상 음반제작자·칠리뮤직코리아 대표 2022. 6. 3.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칡은 줄기를 이뤄 나무를 타고 자란다. 초록색 잔가지는 똬리를 틀 듯 꽃도 피우고, 짙은 흙빛 줄기는 땅속에 뿌리를 내린다. 우리나라 시골 산기슭에선 칡이 자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엔 구황작물로 쓰이기도 했다. 칡뿌리는 갈근(葛根)이라 하여 한방에선 제법 인기 있는 약재다. 우리가 등산 가면 자주 접하는 식물이요, 전통시장에서 칡즙으로 제법 성공한 가게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혹시 산에서 칡을 본다면 그 옆을 한번 보자. 뙤약볕 아래 자줏빛 꽃을 드리우며 등나무가 꽃그늘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 칡과 등나무가 자라는 방향이 참 희한한 것이 칡은 오른쪽으로 자라나고, 등나무는 반대편 왼쪽으로 감으며 자라난다. 둘이 덩굴을 휘감으며 자라는 부분엔 당연히 겹쳐지기도 하고 어긋남도 나타난다. 옛사람들은 눈치도 좋았지. 어찌하여 이 둘의 자라남을 바라보며 ‘칡과 등나무’라는 고유명사만 갖고 ‘갈등(葛藤)’이란 단어를 만들어냈을까?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다. 정치적 보혁의 갈등, 경제적 빈부의 갈등, 세대 간 노소의 갈등, 남녀 간 성별의 갈등, 문화적 호오의 갈등. 그리고 열거하기도 힘든 온갖 사회적 대립과 반목들... .

칡과 등나무가 꼬인다고 이 둘을 잘라내고 급히 걷어내면 어찌 될까? 둘 다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연의 각기 다른 두 속성을 뿌리부터 거세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꼬이지 않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얘기했다. 우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먼저 들어보라고... .

생업(生業)이 음악으로 즐거움을 생산하는 사람이라, 이런 상념 끝에 노래 속 오가는 글귀 하나가 떠오른다. “편견 없이 들어보라(Listen without Prejudice)”.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지 마이클의 2집 앨범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는 단순히 노래를 들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말을 얼마나 듣고 있는 것일까. 자연은 항상 조화롭고, 예술은 갈등을 해방한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바로 그 순간, 갈등은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위대한 시작이다.

이준상 음반제작자·칠리뮤직코리아 대표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