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지역 새 일꾼들을 격려합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2022. 6.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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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커피와 정치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한번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 빠지면 빠질수록 돈도 축나고 몸도 축난다, 내용물보다 잔의 화려함에 끌리기도 한다, 거품이 많을수록 커피 양은 적다, 다수가 좋아하는 커피가 꼭 좋은 커피는 아니다. 제 원래 공약은 명품 커피 잔처럼 화려하고 달콤합니다. 하지만 전 그 공약들을 지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제가 만약 시장이 되면 봄마다 보도블록 교체 안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다리 안 놓겠습니다. 정치 비자금 안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이 내신 세금 저 위해 한 푼도 안 쓰겠습니다. 인사 청탁 안 받겠습니다. 이권이 개입된 그 어떤 시정도 안 펼치겠습니다. 안 하겠다고 한 건 반드시 안 하겠습니다.”

10여년 전의 TV 드라마 <시티홀>, 시장실 방문 손님의 커피 타는 게 업무였던 말단 공무원 신미래의 시장 출마 연설문 일부이다. 드라마 속 가상도시인 인주시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 친·인척 땅 주변 다리 건설, 지역 유지 부동산 옆 시청 이전 등등.

지방자치가 재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어떤 미국 학자는 개인의 삶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잘 뽑는 것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잘 뽑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국방, 외교, 경제성장 같은 국가업무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정책들, 이를테면 교통시설, 약수터, 마을 도서관과 문화센터, 그리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자치단체의 업무이다. 그래서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자치단체가 일 잘하고 못하는 게 큰 영향을 미친다.

복지·교육 등에 새바람 채워주길

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지방의회 의원들이 새로 뽑혔다. 이들은 자신을 뽑아준 시민과 주민을 위해 좋은 행정, 멋진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욕에 충만해 있을 것이다. 초심 잃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를 보내면서 몇 가지 조언을 곁들인다.

일상적인 행정업무를 제외하면 자치단체가 하는 일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복지, 개발, 교육이다. 복지부터 따져보자. 복지는 지방뿐만 아니라 국가업무에서도 중요하다.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가장 많은 지출이 이뤄진다. 중앙과 지방이 함께하더라도 역할은 다르다. 기초연금, 보육료 지원, 기초생활보장급여처럼 국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중앙의 몫이다(이 경우도 설계는 중앙이 하지만 집행은 지방이 담당한다). 중앙이 맡는 정책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탓에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정은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구멍이 많다. 다양한 복지제도가 존재함에도 여전히 생활고를 못 견딘 자살이 발생하고, 독방에서 굶어 죽은 노인이 발견되는 이유다. 자치단체가 수행하는 복지사업은 수백 가지다. 어르신 공로수당도 좋고 청년 기본소득도 괜찮다. 생색나는 복지사업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자치단체 복지 역할로는 빈 구멍 채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민 생활을 꼼꼼하게 챙기자.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도록 하자.

다음은 개발. 뭐니 뭐니 해도 개발사업은 단체장의 으뜸 관심사다. 돈만 있으면, 아니 돈 없어도 빚을 낼 수만 있으면 개발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단체장의 주요 책무니 명분도 훌륭하다. 그러나 개발사업이 비리의 온상이며 예산 낭비와 재정 건전성 악화의 주범인 것도 분명하다. 이제 임기를 시작하는 한창 의욕 넘치는 단체장들에게 개발사업을 자제하라고 할 마음은 없다. 다만, 기왕이면 지역에 실제로 도움 되는 사업, 비용 대비 편익이 큰 사업을 하면 좋겠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형 SOC 사업들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줬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실행하라고 부추긴 것인데, 이로 인한 예산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저질러진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으로 이뤄지는 개발사업은 타당성을 면밀하게 따져서 정말 필요한 사업들을 선정하면 좋겠다.

주민 추앙하라, 추앙하면 달라진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광역, 혹은 기초라도 재정력 풍부한 일부에만 해당한다. 대다수 기초지자체는 대규모 개발은 엄두도 못 낸다. 기초지자체 개발사업에는 청사, 복지관 등 공공건축물이 많다. 단체장은 바뀌어도 공공건축물은 계속 지역주민의 생활 공간으로 이용되고 때로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공공건축은 의미가 큰데, 그러려면 단체장이나 담당 공무원 안목보다는 전문가 의견 존중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공공건축물 사례로는 2000년대 초반의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와 최근까지 진행된 경북 영주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겠다. 둘 다 전문가가 주도한 프로젝트다. 물론 전문가라고 만능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활발히 소통해야 한다. 단, 일단 맡겼으면 간섭 대신 존중하자.

다음은 교육. 교육은 가장 아쉬우면서 제일 기대가 큰 분야다. 지난번 칼럼에도 썼듯이 우리의 초·중·고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학생 수는 감소하는 반면, 국세와 지방세의 일정 몫으로 정해진 교육재정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넘쳐나는 재원을 어찌 써야 할지 고민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큰돈 드는 공약들이 많았다. 졸업준비금, 체험활동지원금, 모든 학생 1인 1패드 제공, 조식 및 방학 중 점심 제공 등등. 어떤 선거든 선심성 공약이 즐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의 남다른 점은 이를 실현할 재원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재원 부족으로 못 지키는 것과 선심성이라도 지키는 것 중 어느 게 나을까. 풍부한 교육재정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에 걸맞은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육감들은 목표를 원대하게 세웠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재정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누려야 마땅하다.

요즘 유행어로 칼럼을 끝맺자. “새로 선출된 지역 일꾼 여러분, 뽑아준 시민, 도민, 주민, 학생들을 추앙하세요. 여태껏 채워진 적 없는 바람을 채워 주세요. 추앙하면 달라집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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