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들이 전체를 닮은 에펠탑, 가까이서 보면 더 아름답다[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2022. 6. 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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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유사성 갖춘 프랙털 이용한
트러스 안의 트러스 구조는
가볍고 강직하게 중력을 이긴다

우리는 자연과 하나인가, 아니면 자연에 대항해 끊임없이 생존할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원치 않는 타자인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전체 물질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개수의 원자로 이루어진 육체의 형태로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언저리까지 가득 채운 욕조에서 알몸으로 완전히 수면 밑으로 들어갔을 때 흘러넘칠 물의 부피만큼.

‘공간’이란 이렇게 우리가 일정 부분 차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물리적 존재의 근원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면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뉴턴과 아인슈타인 모두 이러한 공간(그리고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준 사람들이다.

오늘은 공간에 대하여, 그 중에서 특히 프랙털(fractal)이라는 기묘한 도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숫자 가운데 ‘차원(dimension)’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차원이라고 하면 공간 속 물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숫자의 개수를 말하는데, 그 공간이 하나의 선이라면 하나의 숫자만 필요하니까 1차원(예를 들어 서울~부산 사이를 KTX를 타고 간다면 서울역으로부터 거리)이 되고, 두 개라면 2차원(예를 들어 지표 위의 위도와 경도)이 되고, 세 개라면 3차원(예를 들어 드론의 위치를 알려면 위도·경도에 더해 높이도 알아야 한다)이 된다.

이 차원이라는 숫자는 또한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닮은꼴(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은 같은) 도형들에 있어 둘레의 길이 대비 체적(부피·volume)의 관계를 지배하기도 한다. 먼저, 1차원인 직선 공간에서 선분의 체적은 그 길이 자체를 뜻하므로 길이가 두 배인 꼴 선분은 체적도 두 배가 된다. 2차원 공간에서 정사각형의 체적은 그 면적을 뜻하므로 그 둘레가 두 배가 되는 정사각형의 면적은 2의 두제곱(2²)인 네 배가 된다. 또한 3차원 공간에서 정육면체의 체적은 부피를 뜻하므로 그 둘레가 두 배인 정육면체의 체적은 2의 세제곱(2³)인 여덟 배가 된다. 다시 말해 한 도형이 차지하는 공간의 차원d(차원을 뜻하는 단어 dimension에서 온다)는 닮은꼴 도형들의 둘레 길이와 체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제 다음과 같은 도형을 한번 생각해보자. 정삼각형에서 시작해 각 변의 가운데 지점을 이어 만들어지는 가운데 삼각형을 지운 뒤, 남아 있는 세 개의 삼각형에서 또 그 가운데 삼각형을 지운 뒤 같은 작업을 무한히 반복하여 만들어지는 도형. 무한히 많이 지워낸 삼각형들로 곳곳이 송송 비어 있어 꽤나 앙상한 모양을 가진 이 도형에는 그것을 고안해낸 폴란드 수학자 셰르핀스키(Wacław Sierpinski·1882~1969)의 이름을 따고, 가스가 새나가지 않도록 이음매를 채워주는 개스킷처럼 생겼다고 하여 셰르핀스키 개스킷(Sierpinski gasket)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아래 그림).

이 셰르핀스키 개스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셰르핀스키 개스킷 하나는 그와 닮은꼴이면서 둘레 길이가 절반인 셰르핀스키 개스킷 세 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가운데는 비어 있으니까). 즉 둘레 비율이 2인 닮은꼴 셰르핀스키 개스킷들의 체적 비율은 3이 되므로 위의 관계식에 넣으면 이 도형의 차원(ds라고 쓰자)은 3=2ds로 나타나는데 이를 만족하는 ds는 1도, 2도 아닌 =log₂3=1.58이라는 기묘한 값이다. 즉 위 그림에 표시된 셰르핀스키 개스킷은 1차원(선)도 아니고 2차원(꽉 찬 평면도형)도 아닌 그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는 도형인 것이다.

차원이 1, 2, 3… 같은 정수가 아니라 분수(fraction)라는 말에서 나온(실제는 무리수이다) ‘프랙털(fractal)’로 불리는 이 도형들의 제일 큰 특징은 셰르핀스키 개스킷에서 보듯 작은 닮은꼴 모형이 모여 큰 닮은꼴 모형을 만드는 것으로, ‘부분이 전체를 닮았음’을 뜻하는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을 보인다.

1.58이라는 기묘한 차원을 지닌 도형, 생각하기 좋아하는 수학자의 머릿속이 아닌 실제 세계에도 존재할까? 사실 이러한 프랙털 구조는 셰르핀스키 이전에 이미 건축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다. 1889년 프랑스 토목공학자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1832~1923)의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하고 만든 에펠탑은 속이 조밀하게 차 있는 들보가 아니라 그 안에 더 작은 트러스(truss)로 이루어진 트러스로 지어져 충분한 강직도를 확보하면서도 들보보다 훨씬 가볍게 만들어져 있다. 즉 에펠탑은 트러스 안의 트러스, 바로 자기유사성이 특징인 프랙털의 성질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매우 가볍고 강직하다는 것을 에펠 스스로도 잘 알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아래 사진).

인류가 이러한 자기유사성이 지닌 구조의 특징을 언제 정확히 알게 됐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가 ‘자연’ 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나뭇가지가 뻗어 있는 모양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눈을 감고 하늘을 덮을 만큼 크게 자란 나무를 상상해보자. 곧게 뻗은 나무의 가운데 줄기에서 가지들이 Y 모양으로 갈라져 나오고, 다시 그 가지로부터 또 Y자로 작은 가지가 계속 갈라져 나오는 것이 나무이다. 즉 나무 또한 동일한 모양이 작은 수준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어 발생하는 자기유사성을 지닌 구조물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에펠탑이든 나무이든 바로 이러한 프랙털 구조 덕분에 중력을 이겨내고 높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 놀다가 높은 곳에서 땅으로 떨어져본 적 있는 독자라면 중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알 것 같다. 십수m 키의 나무, 높이가 300m나 되는 에펠탑은 고사하고 사람 키 정도 되는 자전거에서만 땅으로 떨어져도 큰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 중력이니 말이다. 사실 에펠탑과 나무 외에 우리 몸뚱어리도 프랙털에 힘입어 엄청난 중력을 이겨내고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다. 우리 몸의 프랙털 구조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우리 온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 근육, 그리고 장기에 피를 공급해주는 인체의 핏줄계가 프랙털 구조를 갖고 있다. 심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굵고 두꺼운 동맥에서 순차적으로 핏줄이 계속 갈라져 나오는 모습은 나뭇가지와 같은 자기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에펠탑의 다층적인 트러스처럼 그 자체로는 아주 작은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우리 몸 전체에 핏줄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인체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은 물질로 부피를 극대화’
마치 자연의 생존방식 같기도 한
기묘하게 아름다운 존재를 본다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와 높은 에펠탑을 올려다보면서 자연과 인간 기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이라면(또는 그 반대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한 나이든 파리지앵 신사가 매일같이 점심식사를 에펠탑 아래 카페에서 하는 것을 보고 종업원이 “에펠탑을 정말 사랑하시는가 봅니다”라고 했더니 “뭐라고? 파리에서 이 빌어먹을 에펠탑이 안 보이는 데가 여기밖에 없단 말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이 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프랙털은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주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적은 물질로 부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프랙털의 성질은 어떠한 개체이든 제한된 자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자연이라는 적자생존의 장에서 아주 큰 이점을 부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랙털과 같은 기묘한 존재에 대하여 물질계의 냉혹한 경쟁과 도태, 그리고 최적화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 과학이 할 수 있는 전부라면 참으로 아쉬운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비록 과학은 ‘아름다움’이나 ‘창의성’처럼 1, 2, 3…으로 쉽게 수치화할 수 없는 가치들을 연구하는 데 아직 충분한 발전을 이루진 못하였으나, 자연에서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과학을 통해 더 잘 이해하거나 새롭게 표현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고, 필자도 한 번의 재미난 시도를 통해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몇 년 전 어느 날 알고 지내던 건축가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바로 ‘제주도’를 상징하는 과학적 예술품 하나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뒤 한 팀이 된 건축가·예술가와 함께 제주도에 가서 섬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다니던 중 필자 눈에 계속 들어온 것은 구멍이 송송 난 현무암들이었다. 현무암은 낮은 실리카(이산화규소·SiO₂) 함량으로 점성이 작아 용암이 화산에서 분출된 후 비교적 멀리까지 흘러가 식으며 굳어 만들어지는 돌인데, 그 과정에서 용암에 녹아 있던 수증기나 이산화탄소가 기화해 갇히면 빈 기포가 그 안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물이나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표면이 깎여 그 안의 다양한 크기 기포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현무암들이 제주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 품은 현무암을 닮은 구조물
설계·설치해보니 조금은 알겠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과학의 관계를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이 있는 현무암 표면을 보자 필자는 곧바로 셰르핀스키 개스킷과 같은 프랙털 도형들이 생각났고, 우리는 그러한 표면 모양을 가진 현무암의 상징물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러나 현무암 같은 자연적 사물은 셰르핀스키 개스킷처럼 정밀한 규칙을 갖고 만들어지기보단 수많은 분자의 움직임에 내재된 우연성(serendipity/stochasticity)에 기인하여 그 구멍의 크기와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것을 시늉내기 위해 건축물 표면에 적용할 동그란 구멍의 반지름과 위치를 난수로 발생시켜 자연스러운 현무암 표면을 컴퓨터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몇 달에 걸친 기획, 그리고 며칠 밤의 코딩을 통해 만들어진 이 알고리즘이 돌아가면서 컴퓨터가 화면에 그려주는 수백 가지의 디자인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건축물의 최종 디자인을 확정한 다음 우리는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제작 일정을 맞춰야 하는 현실 문제로 제주도의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해가 진 야심한 시간까지 나사를 돌리며 조립하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심미감이 깃든 물건을 직접 만들고, 근처 제주 올레길을 지나가던 한 관광객이 “멀리서 보니까 돌멩이 같았는데 사람이 만들고 있었네”라고 말할 땐 내가 감히 내 손으로 자연의 일부를 빚어낸 것 같은 조물주의 느낌 또한 받았던 것 같다.

그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제주도의 매서운 짠바람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녹이 슨 이 ‘팡도라네’(위 사진)라는 녀석을 철거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별다른 수가 없어 알았다는 한마디로 그 실재하는 물리적 객체로서 그 녀석과는 이별을 고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과학을 통해 내 손으로 표현해낸 뒤 한동안 자연 속에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었던 경험은 비록 매우 짧았어도 매일같이 창의성과 아름다움의 과학을 고민하는 나의 머릿속에 아직도 뚜렷하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프랙털처럼 말이다.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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