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대기업의 투자 보따리

백소용 2022. 6. 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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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조원.

지난 열흘 동안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 13곳이 잇따라 발표한 투자 계획 규모다.

역대 정부 출범 직후 각 그룹 총수가 일자리와 투자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정부 주도로 대기업 투자·고용 계획을 집계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국내 경제 동력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려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기업 오너, 경영진의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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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조원.

지난 열흘 동안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 13곳이 잇따라 발표한 투자 계획 규모다. 자그마치 올해 정부 예산인 607조원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들 그룹이 5년간 창출하겠다고 밝힌 일자리도 40만개에 달한다.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대기업들이 지금 앞다퉈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은 것은 다분히 새 정부를 의식한 행보다. 새 정부가 갓 출범한 시점인 데다 계획 기간도 대통령 임기와 같은 5년 이내이기 때문이다.

민간 주도 성장 기조를 제시하고 있는 새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계획에 화답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화답할 때”라며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실 정권 초에 되풀이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역대 정부 출범 직후 각 그룹 총수가 일자리와 투자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정부 주도로 대기업 투자·고용 계획을 집계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삼성은 3년간 180조원 투자 계획을 내놨고 SK는 3년간 80조원을, 현대차는 5년간 2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어떤 계기로든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경제성장 잠재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국내에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은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기업과 정부가 유연하게 소통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아쉬운 것은 내용이다. 일부 기업의 발표는 주주를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 등에서 이미 내놨던 투자 계획을 5년 단위에 맞춰서 한번 더 제시하거나, 기존에 갖고 있던 중장기 계획 중 일부를 보완해 내놓은 것에 불과했다.

이런 계획은 하나 마나 한 결과를 낳는다. 그동안 정권 초에 기업들이 내놓은 투자 계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됐는지 공개된 것을 보지 못했다. 결국 정권 맞춤형 보여주기식 계획으로 끝난 셈이다.

대내외 경제 변수에 탄력 있게 대응해야 하는 기업이 정부 출범에 맞춰 정형화된 투자·일자리 계획을 발표하는 문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투자 계획 발표에 동참한 한 기업의 관계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정치적 이유로 없던 투자 계획을 새로 만들기는 힘들다”며 “산업 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국내 경제 동력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려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기업 오너, 경영진의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5년 내 투자 계획과 이행 과정을 직접 챙기는 책임경영을 보여줬으면 한다. 기업의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철폐 등 정부의 정책 의지와 지속성도 중요하다.

“모래 주머니를 없애겠다”는 윤 대통령 말처럼 역대 정부에서도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뽑기’ 같은 규제 개혁 약속이 있었지만 공염불에 그치곤 했다.

기업과 정부가 건강한 협력과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면 굳이 정권 초에 떠들썩하게 ‘선물’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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