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계속 늘어도 유독 한국만 무역적자 보는 이유

김지섭 기자 2022. 6. 2. 2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무역수지 적자(-4억3000만달러)를 낸 이후 올해 2~3월만 제외하고 매달 적자 행진이다. 2000년 이래 무역 적자가 2개월 이상 지속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때가 유일하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이어진 무역수지 흑자 기록도 깨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각종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가공한 뒤 되파는 중간재 수출 국가인 만큼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과 주요 원자재 가격이 비슷했던 2011~2014년에는 무역 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려를 낳는다. 독일·대만 등 다른 수출 주도 국가들이 고유가 속에서도 꾸준히 무역 흑자를 유지하는 점도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무역 전선(戰線)에서 한국이 유독 고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 무역수지

◇원자재 가격 상승... 무역 적자 주요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국의 무역 적자 규모는 78억4200만달러(약 9조8000억원)에 달한다. 작년과 2020년 같은 기간 각각 129억5000만달러(약 16조1600억원), 72억1400만달러(약 9조원) 흑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올해 무역 수지가 얼마나 악화됐는지 알 수 있다.

대규모 무역 적자가 난 데에는 고유가 영향이 컸다. 원유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부문은 우리나라 수입액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데, 올 들어 지난달까지 원유와 가스의 수입액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75.1%(236억1689만달러→413억5975만달러), 101.9%(107억8699만달러→217억7453만달러) 늘었다. 작년 평균 69.9달러 하던 배럴당 원유 도입 단가가 지난달 기준 112.1달러까지 치솟은 탓이다. 2020년 평균 도입 단가(45.4달러)의 2.5배나 된다. 농산물 가격 상승도 무역 적자에 일조했다. 농산물 수입액은 지난 3월 24억5000만달러(약 3조1000억원)로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4월에도 24억1000만달러(약 3조500억원)를 기록했다.

◇과거 고유가 때는 괜찮았는데... 유독 韓만 적자에 신음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만으로 현재의 무역 적자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과거에도 에너지·농산물 등의 원자재 ‘수퍼 사이클(supercycle·장기적 가격 상승)’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역 적자가 악화된 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11~2014년에도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현재와 비슷한 배럴당 90~120달러 사이에서 움직였지만 해당 기간 무역 적자가 난 적은 2012년 1월(-23억1700만달러) 한 번뿐이다. 2012년 하반기에는 국제곡물위원회(IGC)의 ‘곡물 및 유지류 가격지수(GOI)’가 현재 수준(340~350)에 가까운 310~320까지 상승했지만 무역 수지가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적자 행진이 이어진 것은 글로벌 수요가 무너지고 환율이 급등한 2008년 금융 위기 때가 유일하다.

한국처럼 원자재를 대거 해외에서 들여와 물품을 제조해 수출하는 국가 중 무역 적자 없이 선방하는 곳이 여럿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독일·대만·베트남이 이에 해당한다. 독일과 대만 역시 주요 원자재 자급률이 10%가 안 되는 국가들이지만 올해 월평균 50억~70억달러가량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 동남아의 주요 제조업 생산 기지이면서 인적 자원 외에 별다른 천연자원이 없는 베트남도 4억~5억달러 무역 흑자를 기록 중이다. 세 나라 모두 작년보다 흑자 규모가 축소됐지만 아직 적자로 돌아서지는 않았다.

◇ 물량 기준으로는 수출 오히려 감소… ‘수출 착시’

한국 경제가 과거와 달리 원자재 가격 급등에 맥을 못 추는 주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수출 성적표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좋지 않다는 점을 첫손에 꼽는다. 우리나라 수출은 2020년 11월 이후 19개월 연속 증가(전년 대비)하고 있고, 작년 3월 이후로는 15개월 연속 해당 월의 역대 1위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1~5월 수출액은 2926억달러(약 365조원)로 1~5월 기준 역대 최고치다.

하지만 이 같은 수출 호조는 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출 단가 상승 덕분이다. ‘금액’이 아닌 ‘물량’ 기준으로 수출 실적을 집계하면 올 1분기 월평균 수출(1557만t)은 전년 대비 4.1%에 증가에 그쳤고, 지난 4월(1476만t)에는 오히려 5.6% 감소했다. 일종의 ‘수출 착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과거 고유가 시기에는 한국의 수출 물량과 단가가 함께 늘면서 수입을 상쇄하는 구조였다면, 현재는 수출 물량이 정체되면서 수출이 수입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유형의 수출 주도국들과 달리 한국만 유독 무역 적자가 나타나는 이유로는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중(對中) 수출이 코로나 봉쇄로 감소한 점, 산업 구조상 원자재 사용량이 특히 많은 점 등이 꼽힌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당 원유 5.7배럴을 쓰는 데 비해 독일, 대만 등은 2~3배럴 정도”라며 “중화학 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명품 소비와 해외 직구 확대 등 소비 패턴 변화도 무역 적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1~4월 의류·가구·안경·핸드백·신발 등 ‘기타’ 부문의 무역수지 적자는 39억달러로 전체 적자(61억달러)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무역 적자가 장기화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후 처음 열린 지난달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무역수지 적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역 적자 흐름을 돌려세우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지적한다. 주원 실장은 “무역 적자가 단기에 해소되려면 원자재 가격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적자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