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지가 않아서 문제

한겨레 2022. 6.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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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의 가사는 자랑과 부러움의 역학 관계를 잘 짚었다며 회자했다.

정확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으니 내가 재미없어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는 부러운 게 많은 사람이었다.

<봄날은 간다> 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만나러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 타고 가는 열정, 어떤 영화가 궁금해 전주까지 보러 가서 새벽부터 줄 서서 표를 사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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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의 가사는 자랑과 부러움의 역학 관계를 잘 짚었다며 회자했다. 나 또한 이 가사에 많이 공감했는데 요즘 나는 오히려 이 ‘부러움 없음’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근래 “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요?” 하는 질문을 각각 다른 모임에서 받았다. 정확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으니 내가 재미없어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한 고민은 아니었다. 남들 보기에 재미있어 보이려고 사는 건 아니니까. (질문자의 기준에서) ‘부러움과 자랑의 세계’에서 비교적 초연한 것 같고, 술도 그다지 안 좋아하고, 게임도 안 하고, 기혼자도 아닌 내가 신기했던 것 같다. 남들이 좋다는 것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족적인 취미가 있어서였다. 극장에 가고 도서관에 가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진다면?

요즘 스스로 열광하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흥분해서 극장에 가서 봤을 영화들이 개봉해도 마음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 모든 시리즈를 극장에서 봤지만 이번에는 패스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공룡에 열광할 나이는 지났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이전의 나였다면 모든 장면을 황홀하게 봤으리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이렇게 한때 열광했으나 지금은 감흥 없는 것들의 목록을 줄줄이 말할 수 있다. 프로레슬링, 힙합 음악, 판타지 소설, 기타 등등. 무언가에 감탄하는 능력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는 부러운 게 많은 사람이었다. 부러워하는 것은 곧 내가 열망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며 가슴 떨리게 동경하던 사람도 이제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게 되었다. 내 열망이 이제 거기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부러워하는 것에 좋은 자극을 받고 열심히 노력하는’ 패턴으로 작동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내 상태에 대해 친구는 ‘신 포도’ 같은 마음인 건 아니냐고 했다. 부럽지 않은 척하는 건가. ‘부럽지가 않어’는 반어법인 건가. 그런 마음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확실히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이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러운 건지 개인적인 문제인지 모르겠다. 위에 열거한 상태가 번아웃 증후군에서 말하고 있는 증상들과 비슷하니 번아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남을 부러워할 에너지가 없는 것인지도. 나는 늘 뭔가를 좋아했는데, 마음을 냉소적으로 가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심드렁하게 됐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만나러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 타고 가는 열정, 어떤 영화가 궁금해 전주까지 보러 가서 새벽부터 줄 서서 표를 사는 열정. 그런 것이 이제 내게 없다. 열정이 사라지는 건 잘못도 아니고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게 (빠질 수 있는 게) 훨씬 더 큰 기쁨이라는 말이 공감된다.

임영웅에게 눈물 흘리며 열광하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나이 들수록 감탄하는 것이 줄어든다면, 그런 와중에 열광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면 나라도 크게 감사할 것 같다. ‘어머님들 파워가 대단해’라며 그저 밈처럼 보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이 있는 사람들의 덕질은 희소하기에 더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다행인 건 이런 와중에 여전히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는 궁금하고 애타게 기다려지는데, 이제는 이런 마음이 당연하지 않고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 작게 타고 있는 귀중한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두 손으로 바람을 막는 마음으로, 애지중지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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