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너지·민주를 묶는 실험, 해보면 돼

한겨레 2022. 6.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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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청년기후행동의 활동가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반기후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년기후행동은 이날 국가차원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최우선에 놓고 탈석탄·탈원전·탈내연 및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100% 국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나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는 ‘서기 2000년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댄스와 함께 흘러나왔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누군가의 예언이 풍문으로 돌았지만, 서기 2000년은 로켓 타고 별 사이를 날고 전쟁도 없는 장밋빛 미래였다. 지금은 세계가 2050년을 되뇐다. 과연 2050년 6월3일의 일상은 어떨까? 지구 온도가 산업화 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올랐다면, 마스크 끼고 6개월마다 백신을 맞으며 아이들을 메타버스에서 놀리고, 날리는 산불 재쯤은 고성능 공기청정기 필터로 막아가며 어지간한 오늘의 중산층처럼 살아낼까?

각국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코로나를 앞지르고, 물가상승이 전쟁 참상을 밀어내는 와중에도 머리 꼭뒤를 당기듯 도사리고 있는 이슈가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2050년 기한으로 지구의 안녕이 담보 잡힌 과업이다. 이는 경제 이슈이자 안보 이슈이기도 하다. 당장 무역에는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이라는 넘어야 할 벽이 들이닥쳤다. 애플, 구글, 지엠 등 세계 360여 기업이 2050년까지 RE100을 하겠다고 모였고,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이들과 거래가 막히게 된다. 반도체 핵심 공정이 재생에너지 불모지인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는 어떡해야 할까? 당장 한국을 떠야 하나? 그나마 장밋빛 전망은 대한민국이 RE100 벽을 넘으면 그 자리에 에너지 안보라는 1+1 덤이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시장 면에서도 반짝이는 산업이다. 1인 1자가용이 됐다고 자동차 소비가 주춤하지 않았듯이 탄소중립이 되면 재생에너지 설비 산업은 혁신을 강요받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을 테니.

한국의 탄소중립 전략 테이블 위에서만 유독 조명받는 안건이 있다. 원자력발전이다. 소형원자로(SMR)라는 현실에 없는 시안까지 주목한다. ‘소형’이라는 단어는 성능과 크기, 안전마저 신박할 것 같은 기대를 끌어낸다. ‘SMR’를 검색해보자. 위키피디아 이미지가 제일 먼저 화면에 등장한다. 180㎝ 사람 위로 20층 건물만큼 올라가 있다. 통 크게 생각해도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리듯’ 시마다 한 기씩 놓기엔 찜찜하다. 방사성 안전은 결코 소형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원자로 부지 설정만으로도 10년을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낼 시간이 채 27년 7개월도 남지 않았다.

왜 정부는 RE100에서 재생에너지로 쳐주지 않는 원자력발전을 해결책으로 제시할까?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 방 돌파정신’이 우리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산업화와 함께한 질긴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여기에 공공 전력 모델이 우리에게는 한국전력뿐이기에 공공 재생에너지 시대를 그려낼 상상력이 빈약하다. 새크라멘토전력공사는 캘리포니아주 전력 생산 5위인 공공기관으로, 1923년에 새크라멘토 카운티에서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는 최근 5년을 당겨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만큼 이들은 지역공동체가 전력 생산 방식에 관여할 권한과 조건을 갖춰낸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선도하는 곳들은 지역의 주택과 산업용 시설, 공유지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이윤을 나누며, 기존 수직적 중앙집중 방식을 수평적으로 분산하면서 속도를 높여왔다. 지역분권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경제 또한 그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냈고 활기찬 로컬경제를 만들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논의는 송전과 배전 비용을 절감하는 건물 옥상(roof top) 태양광이냐,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발전을 하는 태양광 발전소(solar farm)냐를 두고 서로 논박한다. 거기에 2024년에 끝나는 태양광 설치 때 세금 혜택 연장이 불평등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주택을 소유한 중산층 이상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좀 더 민주적인 공공성을 담보하는 길로 들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이 꼴찌인 우리는 뒤늦은 만큼 앞선 이들의 시행착오를 살피며 좀 더 성큼 공공을 위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온 국민이 새벽종에 일어나 만들어낸 마을의 기적, 공장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이다. 모두의 안녕과 이익을 위한 곳에 깃발이 꽂힌다면 기적은 재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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