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직선제 도입 15년..'깜깜이 선거' 대안 요구 커진다

김지연 2022. 6. 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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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실종·진흙탕 싸움에 유권자 외면..'교육자치' 취지 무색
선거공영제·러닝메이트제·제한적 직선제 등 제도개선 지적
인사·예산 권한 '막강'…제도적 견제 '소홀'(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고유선 이도연 기자 = 1일 치러진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는 이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의 외면 속에 '깜깜이 선거'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후보들 간 건전한 교육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이념 논쟁과 상호 비방 일색으로 흘렀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중요성에도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필 기회도 없었다.

직선제 15년을 맞도록 '지역 주민이 직접 교육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는 본래 취지가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 손질,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자치' 위해 도입된 직선제…폐단 속출

시도 교육감은 연간 80조원 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2만여 개 학교의 운영과 학생 590만명의 교육, 교원 50만명의 인사를 책임지는 자리다.

그러나 막상 이런 교육감을 뽑는 선거는 그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치러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감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제로 선출해오다가 2006년 12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직선제로 전환됐다.

교육감 직선제는 간선제 선출 과정에서의 선거 비리, 담합, 교육계 분열 등을 막고 교육감 선출에 주민 참여를 늘려 교육 자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에 따라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먼저 부산에서 2007년 2월 첫 교육감 직선제가 시행됐으며, 이어 17대 대선이 치러진 2007년 12월 울산, 충북, 경남, 제주에서도 잇따라 교육감 직선이 실시됐다.

서울에서는 2008년 7월 첫 직선제가 치러졌다.

하지만 시작부터 교육감 직선제는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깜깜이 선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민들은 누가 교육감 후보로 나서는지, 무슨 공약을 내걸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투표장으로 향했고, 이 때문에 첫 직선으로 치러진 2007년 부산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15%대에 그쳤다.

이어 그해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울산, 충북, 경남, 제주 교육감 선거에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같은 '기호 2번'이 당선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선거 과열, 혼탁 양상은 직선제 선거에서도 되풀이됐다.

특히 다른 시도지사, 기초단체장 선거에 비해 주민 관심도가 떨어지다 보니 후보들은 정책 대결보다는 상호 비방과 인신공격에 열을 올리면서 인지도 끌어올리기에 주력했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유권자들의 귀에 들려온 소식은 정책 대결이 아니라 검찰 고소전이나 단식 투쟁, 삭발 출정식과 같은 요란한 사건들이었다.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으로 예비후보를 고소하거나 후보들 간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단식 투쟁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일부 후보가 다른 경쟁 후보를 향해 '미친○' 같은 욕설을 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이전투구 속에 치러지는 선거는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고, 막상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놓은 정책 제안은 후보간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아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곽모 씨는 "정치색을 떠나 누가 교육 전문가인지도 잘 모르겠고,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내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탁상행정의 결과로만 느껴져 입시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매번 착잡하다"고 말했다.

"전교조 아웃" 구호 외치는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들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와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비롯한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들이 1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월 1일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 교육감들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하며 "전교조 아웃"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5.17 [국회사진기자단] toadboy@yna.co.kr

정책도 정치적 중립성도 '실종'…이전투구 양상

교육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후보들은 정당 공천을 받지 않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선거는 사실상 진보 대 보수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후보들은 선거 현수막이나 팸플릿을 빨강 혹은 파랑으로 내거는 등 은연중 정치색을 드러내고 선거 과정에 각종 이념단체들이 개입하는 등 선거를 둘러싼 대립도 극심해졌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와 진보 후보들 간에는 '전교조 대 반(反)전교조' 노선이 형성되기도 했다.

후보들은 진보 혹은 보수 교육 담론을 진지하게 펼치는 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유권자들도 어떤 후보가 어떤 교육정책을 펼칠지 따져볼 새도 없이 '진보는 싫다', '보수는 안 된다'는 식의 선택에 몰리게 된 셈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교육감 후보자들이 '나는 진보 대표다', '나는 보수 단일후보다' 표명하지 못하게 하고 색깔도 정당 색을 못 쓰도록 정치색을 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치색을 없애고 교육감 제도에 대해 지역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러닝메이트·정당공천'…직선제 대안될까?(CG) [연합뉴스TV 제공]

제도 손질 필요성 지속 제기…방식에는 의견 엇갈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직선제 도입 직후부터 제도 개선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손질해야 하는지 해법은 저마다 다르다.

먼저 '진짜 교육자'가 진입하도록 제도적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교총은 이날 선거 결과에 대한 논평에서 "현행 교육감 직선제는 평생 교육에 헌신한 교육 전문가가 진입하기에는 비용, 조직, 선거구 범위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전문가들이 철학과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 강화 등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교육감 선거가 교육정책 경쟁의 장이 되려면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의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치교육의 원칙을 정립하는 한편, 현재 1회로 한정된 TV토론 횟수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만 18세가 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본인 손으로 교육감을 뽑는 첫 선거였는데, 투표권 연령을 더욱 낮춰 교육감이 펼치는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학생들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육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으니 (선거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리 국민은 교육이 아니라 자녀 대입에 관심이 높은 것"이라며 "관심도가 낮으니 언론이 잘 보도하지 않고 국민은 다시 후보와 공약을 잘 모르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해결할 해법 가운데 하나로 선거 연령을 낮춰 중·고교생에게 투표권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중·고교생이라 합리적 판단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며 "아이들이 직접 공약을 개발해보고, 후보 공약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14세부터 투표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안으로 제시된 정단 공천을 받는 '러닝메이트제'에 대해 박 교수는 "잘못하면 당에 충성하는 사람이 출마할 수 있다"고 경계하면서 "러닝메이트제를 한다면 당내 경선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경선 그룹을 바꾸고 선출 방식도 시도지사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 정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주민까지 포함하는 전체 선거보다는 정책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선거권을 주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송기창 교수는 "교육감 직선제가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다른 제도로 바꾼다고 직선제보다 더 좋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교사, 학부모, 교직원, 사립학교 관계자 등 교육 관계자들만 참여하는 '제한적 주민직선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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