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강남 한복판 임대주택은 과연 이대로 좋은가

연지연 기자 2022. 6.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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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을 넣는 대신 용적률을 더 받아 사업성을 높일 것인가. 임대주택을 하나도 넣지 않고 ‘균질한 이웃’이라는 상징을 얻어 집값을 높일 것인가.

이와 같은 논쟁 끝에 결국 정비구역 해제 절차에 들어간 단지가 있다. 바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임광 1·2차다. 이 아파트는 최고 27층, 9개동 865가구의 대단지로 거듭날 예정이었다. 공공임대주택 148가구를 짓는 조건으로 최고 용적률인 299.99%에 건폐율 50%를 적용받았다.

사업이 순항하는 것 같았지만 일부 조합원의 반대가 나왔다.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새로 지어진 방배그랑자이(구 경남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임대주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방배그랑자이는 전체 758가구 중 33가구가 임대주택이다.

이렇게 된 것은 소형보단 대형 평형 위주로, 임대 주택 수는 최대한 줄여서 살림형편이 비슷한 우리끼리 살기 좋은 아파트여야 집값이 오른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상급지라고 불리는 강남 3구일수록 이런 분위기는 특히 심하다. 하지만 분양 수익을 높이기 위해선 임대주택을 넣고 용적률을 최대한으로 받아야 한다. 그 중간 어딘가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늘 어렵다.

진통 끝에 임대주택을 지어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고가(高價) 아파트 중 하나로 꼽히는 ‘디에이치아너힐즈’에선 임대주택 차별 논란이 있었다. 총 23개동 중 임대주택이 들어간 2개동만 외부를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흰색·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일반분양 동과 확실하게 구분됐다. 임대주택 거주자와 아닌 사람을 의도적으로 나눴다는 비판이 나왔다.

제도가 엉뚱하게 작동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 제도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공고에 따르면 최근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면적 84㎡의 장기전세주택 가격이 12억3750만원에 책정됐다.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는 10억100만원이었다. 주변 시세(19억~20억)의 50~60% 수준이다.

장기전세를 신청하려면 도시근로자 월 평균 소득의 120%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 기준으로는 월 소득 580만원 이하, 3인 가구 기준으로는 770만원 이하다. 적지 않은 소득으로 지원할 수 있는데다, 현금은 10억원 이상 조달할 수 있어야 하니 결국 ‘금수저’ 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억원의 현금이 있는 사람의 주거복지를 위해 나라가 세금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임대주택 건설과 제도운영·관리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변화는 많지 않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많은 사람이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한다. 광장에 사람을 모아 놓고 물어보면 임대주택 건설과 주거복지정책, 소셜믹스에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제도를 시행하고 보면 결국 현실과 맞지 않으니 뒤돌아 쑥덕이는 것이 현실이다. 옳은 일이어도 내 옆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기도 하다.

임대주택을 넣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재건축·재개발 방식을 이끌어 온 것이 언 10년이 넘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던 재건축사업의 임대주택 건립 의무화가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 임대주택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거복지와 공공임대 정책, 소셜믹스에 대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상당수 전문가는 강남에 임대주택이 반드시 필요하냐고 묻는다. 이를테면 금싸라기 땅인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를 차라리 기업에 팔고 매각대금으로 다른 곳에 임대주택을 짓는다면 서울의료원에 공급하는 3000가구보다 훨씬 많은 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에서도 굳이 용적률 상향의 대가로 임대주택 현물을 받을 필요가 없다. 현금화해서 정부가 직접 주거복지에 투자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더 많은 이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라는 의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완전한 해결방식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논의를 지금의 갈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순 있다. 10년 넘은 낡은 제도라면 이제 다시 생각해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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