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리더, 외면하는 리더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2022. 6. 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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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위대한 리더를 판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만, 본인을 (어떤 의미에서든) 뛰어넘는 후계자를 낼 수 있느냐의 관점으로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후계자를 키우는 리더와 못하는 리더, 최고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리더와 외면하는 리더 이야기입니다. 전자(前者)로 스티브 잡스를, 후자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를 다뤄보겠습니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후계자를 제대로 골랐다는 것입니다. 세상엔 뛰어난 기업 창업자·경영자가 많지만, 그 사람의 업적이 그가 임명한 후계 경영자에 의해 훨씬 더 확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GE의 잭 웰치는 위대한 경영자일 뿐 아니라 후계자 양성에도 요란스러울 만큼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보는 대로입니다. 웰치만 비판하는 것도 옳지 않죠. 당대에 정말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후계자가 이어받지 못한 사례는 차고 넘치니까요.

스튜디오 지브리의 로고. 1988년작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 캐릭터를 배경으로 했다.

◇스티브 잡스, 생전에 이룬 업적도 대단하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후계자마저 제대로 골랐다는 것이 그의 위대함을 증명

2011년 잡스가 사망하고 팀 쿡이 애플 CEO에 올랐을 때 많은 이가 “애플은 끝났다”고 했습니다. 호사가들 전망이 맞는 듯 보이기도 했죠. 2012년 9월 아이폰 5 출시 이후, 제품에 혁신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신제품을 사는 대신 구형 아이폰의 가격 인하를 기다리는 소비자가 급증했습니다. 2012년 4분기 애플이 판매한 아이폰 4780만대 중 구형 비중이 40%였으니 말 다했죠. 매출 전망이 떨어지면서 주가가 한때 반 토막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잡스가 생전에 이룬 업적도 대단하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후계자마저 제대로 골랐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입니다. 잡스는 후계자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을 극복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98년 잡스가 쿡을 애플에 영입했을 때, 이미 쿡은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PC업계의 SCM(Supply Chain Management·공급망관리)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애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들 의아해했죠. 영입 10여년 만에 쿡이 애플 CEO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이야 ‘애플=팀 쿡’이지만, 당시만 해도 잡스 이외의 대표선수라면, 디자인 총괄 조너선 아이브나 iOS 총괄 스콧 포스톨 같은 사람이었죠. 쿡을 굳이 설명하자면, 존재감 없는 인물, 잡스와 유사점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잡스는 자신과 닮은 인물을 택한 게 아니라, (물론 어떤 부분에선 잡스가 만든 애플의 기업문화를 가장 잘 보전해 줄 인물이기도 했지만) 애플의 이후 성장과 변화에 적임인, 자신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인물을 택한 것입니다.

‘바다가 들린다’ 남녀 주인공의 고교 시절 한 장면. /아마존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위대한 예술가이자 철학자였지만, 대형 스튜디오 이끄는 리더였기도...후계자 선택할 좋은 기회 많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실패

그럼 반대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입니다. 그는 크리에이터인 동시에 기업가이기도 하죠. 1985년에 동료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세웠습니다.

지브리는 대규모 인력을 정직원으로 고용했기 때문에 꾸준한 매출을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성공 못 하면 개인만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스튜디오 식구들 전체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지브리는 작품이 계속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미야자키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후계자 찾는 일도 중요해졌습니다. 미야자키 이후에도 스타급 감독이 계속 나와주지 않으면 지브리 같은 대형스튜디오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미야자키 이후를 책임질 리더 찾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회사 자체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주력인 제작팀이 2014년 해체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럼 지브리는 왜 후계자를 찾지 못했을까요? 기업경영자나 장기투자자라면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최고경영자로서는 어떻게 최적의 후계자를 찾아 회사를 오래 지속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을지의 문제일 테고요. 장기투자자라면 해당 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는 중요한 항목에 넣어볼 수도 있겠죠. 직원 입장이라면 조직과 나의 성장, 혹은 개인적 성취를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되겠네요.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를 사례로 든 것은 넷플릭스에 지브리에서 나온 작품들이 거의 전부 공개돼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릴 내용에 대해, 여러분도 아주 쉽게 실제 작품을 감상하면서 여러분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작품만 감상해도 충분하지만, 지브리의 시대별 작품 전개를 통해, 기업 혹은 크리에이터를 보유한 조직이 어떻게 지속 성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브리 작품을 보시면, 꽤 이질적인 게 하나 등장합니다. ‘바다가 들린다(海がきこえ·1993년)’입니다. 지브리의 차세대 감독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는데, 감독으로 선택된 사람이 모치즈키 도모미(望月智充)였습니다. 그는 지브리 소속이 아닌 외부인이었고 ‘바다가 들린다’ 공개 당시 35세에 불과했습니다.(당시 미야자키 감독은 50대 초반)

‘바다가 들린다’를 다시 보며 느낀 것은 생명력이 무척 길다는 것입니다. 만든 지 30년이나 됐지만, 작화나 연출, 남녀 고교생 캐릭터와 감정선 등의 매력이 여전하고 오히려 신선합니다. 버블기 절정이었던 1990년 전후 일본 청춘의 감성이 녹아있는 것도, 최근의 레트로 붐에 힘입어 2022년 한국의 10·20대에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바다가 들린다’에서 주인공들이 도쿄 지하철역에서 재회하는 장면. /익스트림무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다가 들린다’가 지브리의 제왕이었던 미야자키로부터 아주 심한 비판을 받았다는 겁니다. ‘바다가 들린다’는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지브리의 엄격한 작업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었죠. 제작 과정에서 모치즈키 감독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연출을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사회 때 모치즈키 옆에 앉은 미야자키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치즈키에게 불만·설교로 일관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의욕과 불안을 안고 작품을 막 완성해 거장에게 선보인 신인이, 거장으로부터 온갖 꾸지람을 듣고 풀이 죽는 광경 말입니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을 ‘최악’이라고 평했는데요. 본인이 생각한 청춘물과 너무 달랐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결국 모치즈키는 이후 지브리에서 배제되고 말지요.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는 미야자키가 왜 그토록 모치즈키의 작품에 화를 냈는지를 훗날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야자키가 자신은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 지브리에서 나온 것을 견딜 수 없어 한 것 같다”라고요.

모치즈키의 ‘다른 연출’에 분개한 미야자키는 불과 2년 뒤인 1995년에 그의 오른팔인 곤도 요시후미(近藤喜文)에게 감독을 맡겨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을 내놓습니다. 모치즈키식 청춘물을 부정하고 ‘지브리식은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듯 말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을 보면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잔영이 보입니다. 당연히 미야자키가 강하게 관여했습니다. 곤도 역시 미야자키의 끊임없는 참견을 견디다 못해, 서로 충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곤도 감독은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1998년 과로사하고 말지요.

곤도 감독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면 참 슬픕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미야자키류이지, 곤도류는 아닌 겁니다. 곤도 감독이 죽지 않고 계속 작품 활동을 했었더라면, 정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작품, 제2의 미야자키가 아니라 지브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곤도로서의 작품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같은 거장이 만든 조직이라면, 그 거장을 중심으로 일이 돌아가는 게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조직에선 새로운 거장, 기존 거장을 뛰어넘는 후계자가 태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거장이 끊임없이 후배들을 간섭하고, 본인 생각을 강요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거장’이란 것이 꼭 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거장에게서 영향 받은 관리자 다수, 혹은 기업의 문화 같은 것으로 치환해도 좋습니다.

제가 2013년 일본에서 미야자키 감독을 일대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젊은 크리에이터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술은 이 세계에 들어오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핵을 확실히 갖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향력과 표현력을 넓히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아도 좋아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이렇게 미숙한 실패를 하다니’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요. 잎을 피우는 필연의 힘을 가진 줄기만 있다면, 그 후 잎을 피우고 꾸미는 것은 서로 지혜를 짜내면 어떻게든 됩니다.”

여기에 뛰어난 후계자를 택하는 일의 어려움·모순이 존재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핵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지 혹은 최소한 두고 보아줄지는 그가 속한 조직의 리더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모치즈키가 좀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미야자키가 그를 ‘방치’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모치즈키가 어쩌면 지브리 미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 됐을지 모릅니다.

‘늑대아이’ 영문 포스터. 호소다 마모루는 지브리에서 맡은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이후 업계 경력이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가, ‘늑대아이’를 내놓으면서 완전히 재기했다. /늑대아이 영문포스터

미야자키의 비판을 받았던 지브리스튜디오 후계자 후보군에 모치즈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늑대아이(2012)’ ‘괴물의 아이(2015)’의 감독으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細田守)도 있죠. 미야자키는 2000년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프로젝트의 감독을 호소다에게 맡겼는데요. 호소다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면, 지브리의 차기 주인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야자키로부터 직접 지명을 받았다는 중압감이 너무 컸던 것인지, 혹은 미야자키와 지브리의 간섭을 이겨내지 못한 것인지, 2년 만에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본인의 애니메이션 인생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렇게 암흑기를 보내다가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 2009년 ‘썸머 워즈’에 이어 ‘늑대아이’로 대박을 내며, ‘포스트 미야자키’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지브리에서 큰 실패를 겪은 뒤 망할 뻔했다가, 스스로 재기해 만들어낸 결과였지요.

지브리의 손꼽히는 애니메이터였던 안도 마사시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스물여섯에 미야자키 단편 ‘온 유어 마크’에서 감독 다음인 작화 감독을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화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지요. 하지만 미야자키류의 캐릭터·스토리에서 탈피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지브리에서 일하는 동안 미야자키와 계속 충돌했습니다. 결국 2003년 지브리를 떠나 외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게 됩니다. 최근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등에서 작화 감독을 맡아 지브리에서와는 또 다른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지브리의 유망 애니메이터였던 안도 마사시는 미야자키와 충돌하다 2003년 지브리를 떠났다. 그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에서 작화감독과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한껏 역량을 뽐냈다. /레딧닷컴

◇영속 원하는 기업에는 고민이자 딜레마... 과거 성공체험이 지배하는 조직의 직원이라면, 경영자·상사와 싸워 이겨내든지, 바깥으로 나와 자신만의 세계 창조하든지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 봅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왜 후계자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요? 참 어렵습니다. 기존의 위대한 리더가 분노하지 않도록 그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보다 나은 무엇을 보여준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치즈키 같은 뛰어난 크리에이터가 지브리에서 축출됐고, 훗날 크게 성공한 호소다 마모루도 지브리에서 그렇게 크게 망가진 것인지 모릅니다.

지브리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브리 식구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기업 관점에서 보면 대실패입니다. 기업은 수많은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매출·이익을 내야 하지요. 뛰어난 인재, 그리고 뛰어난 리더가 계속 나와줘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브리는 기업으로서의 이런 사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일반화하기 어려운 일이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속을 욕망하는 조직이라면 큰 고민이자 딜레마겠지요. 경영자 관점에서는 자신과 닮은 후계자를 찾으려는 욕구를 자제하고 어떻게 냉정하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테고요. 과거의 성공체험이 강하게 지배하는 조직에 속한 젊은 직원 입장에서라면 달리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성공체험에 갇힌 경영자·상사들과 싸워 이겨내든지, 아니면 바깥으로 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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