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도 못채우고 끝나나".. 표류하는 도심복합사업

최온정 기자 2022. 6. 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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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이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새 정부가 기존에 추진되던 공공 재개발을 민간 주도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사업 추진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러다가 사업이 끝나는 게 아니냐’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표된 2·4 공급대책의 대표사업으로 꼽히는 도심복합사업은 현재 후보지 76곳 중 연신내·증산4구역·신길2구역 등 8곳만 본지구 지정을 한 상태로 멈춰있다. 본지구 전 단계인 예정지구까지 간 곳도 지난 1월 굴포천역 인근을 마지막으로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 “속도 빠르다” vs “재산권 침해 심각”… 찬반 갈등 팽팽

도심복합사업은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등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이 직접 시행자로 참여해 신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사업이다. 지자체와 민간에서 추천한 구역을 대상으로 정부와 공공시행자가 사전검토를 거쳐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예정지구로 지정하고, 이후 주민 3분의2 이상이 동의하면 본지구로 지정돼 주택 공급사업이 진행된다.

지난달 25일 서울 한 빌라촌의 모습. /연합뉴스

작년 2월 사업 발표 당시 민간 재개발과 달리 추진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부각하면서 각 지자체에서 사업에 참여하려는 구역이 넘쳐났다. 지금까지 정부는 총 8차례에 걸쳐 후보지를 선정했는데, 1차 모집 당시 접수된 후보지는 209곳에 달했다. 1차에서 21곳이 후보지로 결정된 점을 감안하면 경쟁률이 10대1 수준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컸다. 정부가 투기를 막자는 취지에서 2021년 6월 29일을 권리산정기준일로 지정하고, 이후 집을 매수한 집주인은 무조건 현금청산되도록 하면서 후보지 지정 단계부터 거래를 막은 것이 원인이 됐다.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은 주택을 처분하고 떠날 기회를 잃었다. 일부 주민들은 이를 ‘재산권 침해’라고 반발하며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새로 출범한 정부가 재개발 주도권을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길 의사를 내비치며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원희룡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8월까지 도심 내 주택 2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면서 전임 정부가 추진해온 주택사업의 일부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공공물량을 줄이고 민간사업을 신설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 사전청약·토지주 우선공급 ‘올스톱’… 본 지구서도 사업 지연

정부의 정책 전환 이후 도심복합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당초 오는 12월로 계획됐던 서울·수도권 도심복합사업 사전청약(4000가구) 일정은 내년 상반기로 연기됐다. 사전 청약에 앞서 실시하려던 사업계획 승인과 토지주를 대상으로 한 주택 우선공급도 늦춰졌다. 통상 2~3개월마다 실시되던 후보지 발표도 올해 1월 이후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3080 공공주도 반대 연합회(공반연)’에 따르면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76곳 중 공공 주도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거나, 사업 반대 결의서를 걷고 있는 곳은 45곳에 달한다. 후보지의 절반을 넘는 곳에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 9월 인천시청 앞에서 3080+공공주도반대전국연합(공반연) 인천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공반연 제공

본 지구 지정 이후의 절차도 멈춰있다. 사업 운영규정과 관련해 주민들과 공공시행자와의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도심복합사업은 공공이 직접 시행을 맡는 사업 특성상 주민협의체 운영규정과 정비사업·시공자 선정 등 이후 절차에 대해 시행자와 주민이 합의점을 도출해야한다. 그런데 주민협의체 운영비용 등을 둘러싸고 주민과 공공 시행자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작년 12월 본 지구로 지정된 연신내 일대와 증산4구역은 LH와 주민협의체 운영규정과 관련된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해 아직 주민 총회를 갖지 못했다. 일반 정비사업에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주민동의 3분의 2를 충족하면 조합설립 총회를 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신내 일대의 한 주민은 “주민협의체에 결정 권한을 주겠다던 당초 정부의 약속과 달리 공공시행자와 협의가 잘 되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면서 “사업이 더 늦어질까 염려스럽다”고 했다.

◇ 전문가 “선택과 집중 필요… 추진 의지 강한 곳 속도 높여야”

전문가들은 사업이 지지부진한 곳에서는 후보지 지정을 철회하되, 주민들의 추진 의사가 강한 곳에서는 사업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의 내실을 다지고 주민 간 갈등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후보지로 지정되면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해 심각한 재산권 침해가 발생한다”면서 “반대가 거센 곳에서는 후보지 지정을 철회하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곳은 계획대로 마무리되도록 해 주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새 정부 출범 후 민간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면서 도심복합사업 후보지의 사업 진행속도는 더욱 더뎌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추진 의지가 강한 구역 위주로 속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정부도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며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민 호응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사업을 승계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선 공공물량을 일부 줄이고 민간사업을 신설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면서 “정해진 것은 없다. 오는 8월 관련 내용이 확정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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