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두 사람 이어준 건 사진..'로버트 카파' 뮤지컬로

정혁준 2022. 6. 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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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카파이즘' 초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게르다 타로
두 실존인물 모티브로 한 2인극
만남과 생존 위한 분투에 초점
탄탄한 연기·노래로 100분 꽉 채워
창작 뮤지컬 <카파이즘>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프랑스 파리에서 두 사람을 이어준 건 사진이었다.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앙드레 프리드만(엔드레 에르뇌 프리드만)은 자신이 찍은 러시아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의 연설 사진을 독일 출신 사진가 게르다 타로에게 보여준다. 나치를 피해 프랑스에 온 두 이방인은 이 사진이 인연이 돼 연인으로 발전한다.

5월7일 막을 연 창작 초연 뮤지컬 <카파이즘>은 이렇게 시작한다. 뮤지컬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에 픽션을 더한 2인극이다. 제목은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에서 따온 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 정신을 뜻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앙드레와 게르다는 함께 사진 작업을 하며 희망이라고는 찾기 힘든 파리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희망을 찍으려 한다. 하지만 파리는 연인이 된 이방인 커플이 살아가기 너무 힘든 곳이었다.

로버트 카파의 <연설하는 트로츠키>. 매그넘 포토스

앙드레는 잡지사에 찰나를 놓치지 않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렵게 찍은 사진을 보내지만, 수입은 시원찮았다. 게르다는 “우리가 300장을 찍었지만 겨우 한장이 실렸어. 우리 필름값은 벌어야 하잖아. 게다가 우리가 어리고 미국인이 아니라서 값도 제대로 쳐주지도 않아”라며 분노를 토해낸다. 겨우 20대 중반에 들어선 이들에겐 세상은 차가웠다.

그러다 게르다는 앙드레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제대로 된 사진값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이 가장 미국적인 이름인 로버트 카파였다.

두 사람은 조금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앙드레는 공화파 민병대원의 전사 장면을 찍는다. 그가 포착한, 죽음 앞에서 절묘한 자세로 비극적인 표정을 짓는 민병대원 사진은 전쟁의 광기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실제 이 사진은 조작 논란이 일었지만, 미국 사진 잡지 <라이프>에 실리면서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로버트 카파의 <코르도바 전선에서 쓰러지는 병사>. 매그넘 포토스

하지만 둘은 전쟁의 참혹함에 힘겨워한다. 죽음 앞에서도 숙명처럼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다. 죽음조차 카메라에 담아야 할 피사체란 점은 둘을 못 견디게 했다. 게르다는 “숱한 시체에 부상자와 고함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우리 필름에 죽음이 땀처럼 배어나”라고 말한다. 앙드레도 “나 이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찍고 싶어”라며 게르다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이들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앙드레가 잠시 파리로 떠난 사이, 일을 마무리하고 파리로 가겠다던 게르다는 전사하며 덧없이 세상을 떠난다. 실제 두 사람은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다.

창작 뮤지컬 <카파이즘>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뮤지컬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로버트 카파는 실제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대상에 더 가까이, 죽음의 그림자가 역력해도 더 가까이 다가가 셔터를 눌러야만 사진은 사진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전쟁의 한가운데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잔혹함을 사진으로 남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잔인한 전쟁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온 지금, 이 뮤지컬은 그런 전쟁의 잔인함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전쟁의 또 다른 의미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은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현장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두 젊은이는 생존을 위해 그 현장에 뛰어들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남겼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시각에서 되짚어본다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멀리서 보면 모두가 잘살 수 있는 희망의 불빛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게 자본주의의 본질이기에 그러하다.

창작 뮤지컬 <카파이즘> 공연 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뮤지컬 <카파이즘>은 로버트 카파의 삶 자체에 집중했다기보다는 두 사람의 만남과 그들이 삶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앙드레는 이상적이고 우유부단하지만, 게르다는 현실적이고 주체적이다. 뮤지컬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주인공은 앙드레보다 게르다에 가깝다.

공연은 무대 전환 없이 하나의 세트에서 진행된다. 카메라 내부를 옮겨다 놓은 듯한 무대와 카메라 셔터와 필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조명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대를 어둡게 한 상태에서 장치나 장면을 바꾸는 암전이 많은 편이다. 암전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빨간 조명은 전쟁과 죽음을 상징한다.

창작 뮤지컬 <카파이즘> 포스터.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고작 배우 두 명이 100분이나 되는 공연을 이끌어간다고 해서 자칫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잊자. 밀도 있는 연기와 탄탄한 노래 실력으로 100분은 카파의 ‘순간’처럼 느껴진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넘버와 피아노·드럼·기타로 꾸린 라이브 밴드 세션이 무대 밖에서 뒷받침한다.

앙드레는 유승현·안재영·김준영이 맡아 연기한다. 게르다는 최연우·정우연·김이후가 맡아 무대에 오른다. <카파이즘>은 7월10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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