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인가 합법인가

나경희 기자 입력 2022. 6. 2.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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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낙태죄'는 66년 만에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인터넷 검색과 자본이 공백을 메우고 있다. 그사이 혼란은 시민들의 몫이다.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헌재 앞에서 환호하는 여성들. ⓒ시사IN 신선영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낙태’ 혹은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각종 산부인과 광고가 뜬다. 스크롤을 더 내리면 네이버 ‘지식인’에 등록된 질문들이 뜬다. ‘임신중절’ 방법이나 시기, 비용에 대해 묻는 질문이 하루에도 여러 건이다. 특히 ‘혼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와 같은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여기에 달린 답변들은 제각각이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죄가 폐지돼서 여성이 단독으로 수술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의사는 “현재까지는 모자보건법에 의거한 수술이 가능하며 그 허용 범위는 다음과 같다”라며 제한 조항들을 달기도 했다. 어쩌다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게 되었을까? 현재 한국에서 ‘낙태(임신중지)’는 불법인가, 합법인가?

혼란의 시작은 약 3년 전인 2019년 4월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헌법재판소(헌재)는 ‘낙태죄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3명이 즉시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단순위헌’, 4명이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둔 뒤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해당 법이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존속해야 한다는 ‘합헌’ 의견은 2명이었다. 이에 따라 헌재는 유예기간을 두고 2020년 12월31일까지만 낙태죄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66년 동안 ‘낙태죄’라고 불리던 형법 제269조 제1항(“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과 제270조 제1항 중 낙태 시술 의사에 관한 부분(“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은 2021년부터 효력을 잃게 됐다. 국내에서 의사로부터 받는 임신중지 수술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왜 헌재는 굳이 유예기간까지 두어가면서 정부의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까?

우선 관련 법 체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임신중지를 규정하는 법률은 형법만이 아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중지 수술이 허용되는 범위를 명시하고 있다. ①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②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④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⑤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다. 그동안 임신중지 수술은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다섯 가지 경우에만 받을 수 있었다. 그 외의 이유로 행해진 수술은 형법에 의해 임신 당사자와 의료인 모두 처벌받아왔다.

헌재의 결정으로 2021년부터는 수술 허용 범위(모자보건법)만 남게 되고, 처벌 규정(형법)은 사라지게 됐다.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수술이 이뤄져도 딱히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됐던, 네이버 지식인에 달린 답변이 둘 다 맞는 셈이다. 여전히 모자보건법상 수술 허용 범위가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의 범위에서 수술이 이뤄지더라도 처벌되지는 않는 모호한 상황이 1년 반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11일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여성 차별 유지할 것이냐’의 문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어떤 행위가 범죄행위인지 아닌지는 형사법에서 결정한다고 말했다. “낙태죄는 형사법에서 효력이 상실됐으니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모자보건법 조항을 정리하기 위한 입법은 필요하다.” 현재까지 모자보건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2019년 헌재 판결 이후 모자보건법 관련 개정안이 총 7건 발의되었지만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에는 모자보건법뿐만 아니라 형법 조항을 수정하려는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이 가운데 2020년 11월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로 넘어온 정부 발의안은 ‘조건부 낙태죄’를 규정한다. 임신 14주 이내 임신중절은 허용하고, 14~24주 이내 임신중절은 ①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②혈족·친족 간 임신된 경우 ③사회·경제적 이유로 여성을 곤경에 처하게 할 경우 ④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에만 허락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중지를 할 경우는 상담을 받아야 하고 상담 후 24시간이 지나야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을 놓고 2020년 12월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헌재 결정 이후 1년8개월 만에 열리는 첫 공청회이자 헌재에서 명시한 유예기간을 3주 남긴 시점에 열린 마지막 공청회였다. 이마저도 반쪽짜리 공청회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단독 처리에 반발한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이 모두 퇴장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연 낙태죄 개정 공청회. ⓒ연합뉴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그날 ‘낙태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진술인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그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절충해야 하느냐는 신동근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이 문제는 형법상의 문제다. 형법에서 생명권이라는 것은 진통 시를 기준으로 태아가 사람이 될 때 갖는 것으로 본다. 그 이후에 생명권을 논할 수 있다. 태아 상태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교수(기독교윤리 전공)는 “오늘 그리스도교 윤리신학자, 개신교 윤리신학자로서는 드물게 낙태죄 전면 폐지의 진술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라고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신중지는 윤리적 딜레마에 가장 가까운 사항이다. 쉽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딜레마를 모면하는 쉬운 방식을 선택한다. 오늘 낙태법 존치의 문제는 결국 태아의 생명을 살릴 것이냐 안 살릴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날 공청회에는 산부인과 의사도 두 명 참석했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2018년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국내 여성의 임신중절 평균 주수가 10주 이내다. 10주 이내로 (법적 제한을) 하더라도 90% 이상의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라며 10주 미만으로만 제한 없는 임신중지를, 10~22주에는 상담과 숙려 기간을 거친 뒤 임신중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주 미만 제한 없는 임신중지, 14~24주 조건부 임신중지가 가능한 정부 발의안보다 2주씩 당긴 보수적 방안이다.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는 의사들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거부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직업적 윤리가 있다. 임신을 유지하는 데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거부하는 의사에게 어떠한 종류의 불이익이나 낙태 절차와 관련된 어떠한 의무도 부과해서는 안 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이날 2시간20분 동안 이뤄진 처음이자 마지막 공청회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모자보건법도 형법도 개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임신중지 수술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복잡한 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곳도, 약물 사용이나 수술 절차에 대해 공식적이고 종합적으로 안내해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의사는 이 공백을 자본이 메우고 있다고 본다. “안전하게 이루어져야 할 임신중절이 시장 논리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서조차 양극화가 생기고 있다. 임신중절 시술을 받기 힘든 청소년이나 이주 여성들은 카톡방을 통해 구한 미프진(유산유도제)을 먹고 위험하게 ‘자가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에서 낳은 아이가 발견된다든지 하는 사건이 자주 보도되는데 십중팔구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받지 못하고 불법으로 유통된 약을 먹었을 확률이 크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이 2021년 3월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제공

건강보험 적용 논의조차 시작 못해

추가 입법만이 유일한 방법인 걸까? 윤정원씨는 ‘추가 입법 전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에서 건강보험을 적용하거나 산부인과학회 또는 의사회에서 의사들에게 교육을 하는 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에서 임신중절 시술 항목으로 국민행복카드(임신한 여성에게 진료비를 지원해주는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식약처에서 국내에 미프진을 공식 도입할 수도 있다. 꼭 법을 바꾸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2021년 7월 영국 제약사와 미프진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약품이 식약처에 품목 허가 신청을 했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2021년 12월3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내에서 임신중지에 관련된 정보와 약물을 구할 수 있는 국제 비영리단체 ‘위민온웹’의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 조치했다. 일반인이 처방전 없이 온라인으로 전문의약품을 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3월 시민단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위민온웹 홈페이지 접속 차단을 풀어달라는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다.

임신중지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했다. 2021년 2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금 현재 형법상의 낙태가 허용되는 합법적인 범위가 법안으로 제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단에서 14주다 24주다 이런 문제가 결정되면 그에 따라서 건강보험법상 준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형법 개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까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을 말씀드린 거다. 이제 의료 부문으로 접근해야 되기 때문에 준비 계획을 수립하셔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지만 권덕철 장관은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국회에서 논의가 되면 저희가 어떻게 할지 준비는 하고 있다.”

입법에도 종류가 있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만약 임신중절을 불법화하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합법의 영역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제 어떻게 처벌할지가 아닌,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입법이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상담이나 의료비가 지원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기본법 형태로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 제시한 ‘성·재생산 권리보장 기본법’이 한 예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재생산 권리’란 ‘차별·강요·폭력·사회적 낙인 없이 자녀를 가질지 여부와 시기, 방법, 자녀 수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사할 권리’를 의미한다. 셰어가 제안한 해당 기본법은 월경, 피임, 성별 확정 및 성별 정정, 보조생식기술, 포괄적 성교육, 일터 혹은 교육·보호·복지시설에서의 성·재생산 권리의 보장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특히 임신중지에 대해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와 관련하여 필요한 정보, 상담, 적절한 보건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의료비용, 의료기관에의 이동 지원, 의료기관에서의 통역 지원 등 임신중지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등의 구체적 조항을 통해 임신 당사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으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밝혀두었다.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기본법은 고사하고 아직도 ‘불법이냐 합법이냐’ 논쟁조차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임신중지 이슈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지나갔다. 약사 단체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서 대선 후보자 6명(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백윤 노동당 후보, 김재연 진보당 후보)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 보장과 관련된 질문이 포함된 의약품 정책 질의서를 보냈다. 윤석열·안철수 후보는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뒤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마련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도 임신중지에 관한 언급은 담겨 있지 않았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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