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올해 칸 영화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김성현 문화부 차장 2022. 6. 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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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찬욱과 배우 송강호가 28일(현지 시각)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해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는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22.5.29/뉴스1 ⓒ News1 이준성 프리랜서기자

올해 칸 영화제는 최고 31도에 이르는 초여름 불볕더위 속에 열렸다. 영화제 기간 내내 현지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한국 영화’였다. 우선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을 놓고 경쟁하는 공식 부문 초청작(21편) 가운데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등 두 편이 한국 작품이었다.

거기에 영화제 초반에 선보였던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와 ‘비평가 주간’ 폐막작이었던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까지 올해 영화제의 처음과 끝에는 사실상 한국 영화가 있었다. 한 편만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도 가슴 벅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영화제 기간 내내 한국 영화가 빠지는 날이 없다. 이런 열기는 남우주연상(송강호)과 감독상(박찬욱) 동시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으로 정상에 오른 뒤 불과 3년 만에 작성한 한국 영화의 대기록이다.

하지만 2019년과 올해 사이에는 코로나 사태 외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는 ‘한국 감독(연출)과 배우(연기)들이 한국(장소)에서 한국어(언어)로 제작한 한국 영화사(자본)의 작품’이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였다. ‘기생충’ 역시 이런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와 언어, 연출·연기와 자본의 일치라는 한국 영화의 기존 관념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이 올해 칸 영화제였다.

실제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가 연출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는 중국 배우 탕웨이가 주연을 맡았다. 수상 직후 박 감독이 “아시아의 인적 자원과 자본이 교류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었던 ‘리턴 투 서울’은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여주인공이 친부모를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인 데비 슈가 연출했지만, 오광록·김선영 등 한국 배우들과 함께 한국에서 촬영을 마쳤다. 이 영화에서 주제가처럼 흐르는 음악도 신중현의 명곡 ‘꽃잎’과 ‘봄비’ ‘아름다운 강산’이다. 과연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일까 아닐까. “21세기 한국 영화의 정의(定義)가 무엇인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박성호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담당 프로그래머의 말이 실감났다.

한국 영화의 지평이 넓어지는 동시에 경계는 흐릿해지는 다국적화·무국적화 현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가 대부분이지만 미국 영화로 분류된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영화사 플랜B가 제작했기 때문이다. 역시 윤여정·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이 주연한 애플의 ‘파친코’ 역시 미국 드라마다. ‘한국인들이 출연하는 외국 드라마’ ‘외국인들이 감독하고 연기하는 한국 영화’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화려한 수상 기록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의 새로운 변화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주의 역시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한층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변모해야 할 시점이 된 건 아닐까. 경제 부흥이든 통일 지향이든 과거의 민족주의에는 자국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구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속에 한국이 있고, 한국 속에 세계가 있다. 주도권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활짝 문호는 개방해서 경쟁력과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최근 한국 영화·드라마가 보여준다. 올해 칸 영화제를 현장에서 취재하며 깨달은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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