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임금피크제, 청년 일자리, 개혁 의지

국제신문 2022. 6.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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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노동계도 경영계도 그 의미와 파장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임금피크제는 2013년 이전에는 금융기관 언론 등 일부 극소수 기업에서 시행되던 제도로, 그 이름조차 생소한 것이었다. 이 제도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년연장이 법으로 의무화되면서부터였다.
2013년 4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정년연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 법으로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부터, 나머지 사업장은 2017년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됐다. 기업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비용상승 요인이었고, 그에 대한 탈출구로 등장한 것이 임금피크제였다. 그것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
‘고령자 고용촉진법’이 통과된 1년 후인 2014년 5월 기재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 연공급제인 공공기관의 인건비가 증가하고 신규채용은 감소할 것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 기재부 발표 3달 후인 8월, 박 대통령은 임금피크제를 금년 중으로 공공기관에 전면 도입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역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고용시장에서 나이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법 개정의 취지는 묻혔다. 정년연장과 청년 일자리라는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는 의제는 노동자들 간의 세대 갈등을 부추겼다. 이후 임금피크제는 전면적으로 도입됐다.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을 창출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확답할 수 없다. 연구자에 따라, 혹은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기재부 권고안이 나온 지 1년이 된 2015년,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노동부 담당실장은 “60세 정년연장이 의무화되는 상황에서 청년과 장년이 공존하는 일자리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2017년 국회예산처의 연구용역 보고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고령층 고용은 0.8% 증가했으나, 청년층 고용에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제도가 검토된 적이 있다. 60세 정년이 민간기업까지 의무화된 지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이때는 노골적으로 세대 간 갈등이 전면에 등장했고 결국 유야무야됐다. 청년실업과 고령화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은 더 분명해졌다.
이제 임금피크제로 돌아가 보자. 노동부 설명에 의하면 임금피크제는 고령화에 대비해 중장년층이 일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주어를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정년연장으로 바꾸는 것이 입법 취지에 걸맞다. 이 점을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확인시켜 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고령화 시대의 청년 일자리 문제는 이제 새 정부의 과제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과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다. 단순히 더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더 좋은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개혁 의지와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비밀이 있다. 일자리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과정에 극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 그리고 대한민국 일자리의 90%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에서 창출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일자리의 문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자면 재벌 혹은 대기업과 하청 중소 중견기업 간의 관계를 바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왜곡된 하청구조를 그대로 두고 중소·중견기업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는 요원하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자리 정책은 재벌개혁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설사 재벌이 수십 수백조를 투자하더라도 이 문제를 외면하는 한 어떤 일자리 정책도 실패할 것이다.


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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