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노래한 공연장에 황금빛 클림트 휘날리다

정상혁 기자 2022. 6.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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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시어터 '구스타프 클림트'展
클림트가 유화 물감과 금을 섞어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전시장 전체를 순도 높은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최고 높이 21m의 수직성이 관람객의 감각을 압도한다. /정상혁 기자

어둠 속에서 금박(金箔)의 지느러미가 움직인다. 금붕어가 나른한 허리를 저어 빛의 파문을 일으킨다. 그 율동이 현악기의 부드러운 마찰음으로 변해 공기를 흔들자, 이윽고 나체 여인이 눈부신 흰 등을 드러내며 광휘의 복판으로 등장한다.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부려놓은 ‘금붕어’, 그 관능의 물감이 점차 여백을 장악하며 퍼져 나간다. 새로운 황금기가 시작된다.

클림트의 걸작이 빛으로 환생해 암흑을 환희로 바꾼다. 제주의 황금 알 낳는 거위로 자리매김한 ‘빛의 벙커’가 서울에 상륙한 것이다. 광장동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공연장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개조한 ‘빛의 시어터’다. 움직임을 부여한 클림트의 그림을 벽면에 투사해 음악과 함께 공간 전체를 에워싸는 전매특허 기술력에 기반한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Gold in Motion)’ 전시로 개막해, 내년 3월까지 그 위용을 이어간다.

바닥과 벽면을 채운 클림트 유화 ‘팔라스 아테나'의 금박 갑옷은 이윽고 꽃잎처럼 흩날린다. /정상혁 기자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가 거대한 공간을 에워싸고 있다. /정상혁 기자

용도 폐기된 공간을 빛으로 되살리는 전시 콘셉트처럼, 이곳은 1963년부터 국내 공연계의 상징적 장소 구실을 한 ‘워커힐 시어터’를 탈바꿈했다. 루이 암스트롱을 필두로 패티김·윤복희·펄시스터즈 등 쟁쟁한 당대 가수들이 모두 거쳐간 쇼 무대다. 총면적 1000평, 1~2층으로 나뉜 공간 구획부터, 천장의 샹들리에와 과거 분장실까지 기존 공연장의 특색을 살뜰히 살렸다. 곳곳에 원형 소파를 비치해 몽상의 편의성을 높이고, 전시장 끝에 너른 계단식 객석을 마련했다. 이제 이곳을 30분간 클림트가 채운다.

‘팔라스 아테나’(1898) ‘유디트’(1901) ‘키스’(1908) 등 전시장에 구현되는 황금의 메타포가 ‘양귀비 언덕’(1907) 등의 서정적 풍경으로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빛의 벙커’ 개관전 당시 검증된 감동을 충실히 되살려낸다. 효과를 배가하는 건 최고 높이 21m의 압도적 층고다. 이를테면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의 흰 얼굴이 사방에서 잇따라 떠오를 때, 그 막대한 사이즈로 말미암아 관람객은 일종의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관람객 장주영(23)씨는 “층고 덕에 시각적 쾌감이 컸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부는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1928~1962)의 시간이다. 고유의 청색으로 특허까지 따낸 단색(單色) 회화, 푸른 물감을 알몸에 바른 여성들이 캔버스 위를 굴러다니며 남긴 흔적의 회화 ‘무제–인체 측정’ 연작이 부활한 이브 클랭의 지휘에 맞춰 10분간 약동한다. 그러나 어쩌면 전율은 음악의 진동 때문이 아니다. 화면 전면에 금박을 입혀 그린 ‘황금시대’(1959) ‘침묵은 금이다’(1960) 등이 일순 전시장을 금맥으로 바꿔놓을 때, 클림트와 한 맥락으로 묶인 이유를 수긍하게 된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황금이 발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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