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추앙의 자세

방호정·작가 2022. 6.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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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마침내 종영했다. 극 중 주요 대사에서 이제는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추앙(推仰·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의 마음으로 매회 반복 시청을 거듭해온 터라 서운하기 짝이 없다.

사실 이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는 매우 강한 편이었다. 나처럼 추앙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불호를 넘어 분노하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들의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극적인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시청자들 기대에 보답하는 여느 드라마들과 달리, 이 드라마는 푸념과 하소연, 수다와 독백 등 다양한 말[言]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前作)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역)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 알게 되면, 그 사람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내가 널 알아.” 일면식도 없지만 박해영 작가와, 작가가 만들어낸 수많은 극중 인물을 ‘아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나는 드라마에서 배운 추앙의 자세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조건 없이 응원해버리기로 결심했다.

박해영 작가는 어쩐지 드라마를 통해 계몽을 실천하기로 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이데아’, 서태지와 아이들)라는 가사의 노래가 히트를 치던 시절에 20대를 보낸 나는 어떤 매체에서든 계몽의 냄새가 살짝이라도 느껴지면 강한 거부감이 들곤 하는데, 이 정도로 설득력 있고 몰입할 정도로 재미있는 ‘계몽 드라마’라면 괜찮지 않은가 싶었다. 오히려 반가울 정도다. 사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후부턴, 누구도 나서서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아마 이젠 더 바뀌지 않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가끔 호되게 혼이 나야 할 필요를 느끼는데도 말이다.

이 드라마는 부질 없이 손익을 따지고 계산하느라 관계를 망쳐버리는 평범한 이들에게 추앙이라는 실전 비기를 전수했다. 극중 염미정은 “나를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라고 구씨에게 말했지만, 추앙은 결국 스스로를 먼저 채우고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드라마는 알려준다. 드라마로 잘 배웠으니, 이제는 실전 단계다. 일단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확, 그냥 추앙해버릴 거다.

방호정 문화칼럼니스트, 부산힙스터연맹 총재일사일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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